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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2.강론.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 죄 ~"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22 조회수2,019 추천수0 반대(0) 신고

 

마르 3,22-30(연중 3 )

 

갈리래야와 가파르나움에서의 예수님의 초기 전도활동은 여러 곳으로 소문이 퍼져나갔고, 치유를 받고자 하는 이들이 그분의 일행이 음식을 들 수조차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은 그분이 미쳤다고 생각하고 붙잡으러 왔습니다. 또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이방인 신인 베엘제불(바알 즈불: 2열왕 1,2, 에크론 시의 수호신, 집의 주인 혹은 신들의 신)에 사로잡혔거나 마귀 우두머리(사탄)의 하수인이라고 모함하고, 이에 예수님께서는 갈라진 나라와 집의 비유를 통해서 반박하십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분을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용서받지 못하는 죄에 대한 말을 통해, 당신께서는 미쳤거나 베엘제불에 사로잡혔거나 미치거나 마귀의 하수인이거나 더러운 영에 들린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그와 같은 일을 하신다는 것을 밝히십니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르 3,29)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 죄가 있다니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속죄양이 되셨는데, 어찌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있을 수가 있을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에 한계가 있다는 말일까? 혹 하느님의 자비에 한계가 있다는 말일까? 왜 용서받지 못한 죄가 있을 수가 있을까?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잘 알아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용서받지 못하는 죄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용서하지 않는 죄가 아니라 용서받지 못하는 죄라는 점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용서하시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셔도 그가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곧 용서받지 못함은 용서하시는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시는 게 아니라 용서하시지만, 인간이 그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용서받지 못한 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모독하는 죄란 도대체 어떤 죄를 말할까?

 

그것은 용서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의지적으로 배척하고 비난하거나, 사탄의 일로 단죄하거나 방해하거나 핍박하는 죄를 말한다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율법학자들이 바로 그런 죄에 걸려든 이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령을 모독하는 죄가 왜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되는 걸까?

 

그것은 성령의 활동을 고의적으로 방해하여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고 마는 바람에 새 생명으로 태어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은총과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시는 성령을 고의적으로 배척하여, 빛을 주시고 성화시키시는 성령의 활동을 스스로 제외시킴으로써 결국 구원의 가능성이 상실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의 완고함과 고집으로 성령의 활동을 거부한 바람에 용서가 차단되어 버린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주님이 아닌 피조물인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따르는 우상숭배에 빠진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저희를 용서하시고자 하시는 성령의 숨결을 거부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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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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