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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우리는 죽을 때까지 초보자입니다.)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22 조회수1,851 추천수1 반대(0) 신고

 

"우리는 죽을 때까지 초보자입니다."

+ 찬미예수님!

 우리 앞뒤로

성탄 축하 인사 나눕시다.

“성탄 축하합니다.”

 누구한테 물어볼까요?

 독서한 형제님,

손가락이 몇 개에요?

열 개인 이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있으세요?

열두 개나 열일곱 개쯤 되면

훨씬 더 일하기 편할 텐데

왜 하필이면 열 개일까요?

세상 나오기까지 몇 달 걸립니까?

세상 나오기까지 열 달 걸렸다고

하는 것을 늘 기억하라고 하는 거죠.

네 자신이 무슨 공장에서

물건 만들 듯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너를 잉태 후 열 달 동안

 네 어미가 너를 지키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죠.

저절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10달 동안 엄마 뱃속에서

지킴을 받았고 나중에는 엄마의

살을 찢으면서 나왔잖아요?

맞죠? 그것 기억하라는 것이

손가락 열 개에요.

 그럼 손, 발 합쳐가지고는 몇 개에요?

스무 개죠. 왜 합쳐서 스무 개에요?

사람 구실 제대로 하려면 최소한

이십 년은 걸려야 돼요.

그때까지 부모의 은혜를

받고 사는 거니까,

‘너 혼자 컸다고

까불지 말라’ 이거에요.

그럴듯하죠?

 얼굴에 왜 구멍이 일곱 개냐?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은사를

몇 개 받아요? 일곱 개.

얼굴에 구멍이 일곱 개라는 것은

성령 칠은이 들어오는 구멍이에요.

콧물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구멍이 아니라. 눈에도

성령이 들어오셔야 되고,

코에도 성령이 들어오셔야 되고,

우리의 귀에도 성령이 들어오셔야 되고.

특별히 우리 입에도 성령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그 구명이 바로 일곱 개.

 확실한지는 모르지만,

어느 의사가 얘기 합니다.

배 속에서 열 달 동안 살면서

한 달마다 한 개씩 손가락

모양이 딱딱 만들어진데요.

이렇게 힘들게 세상에 나왔는데,

얼마 전에 애기들 죽었죠?

엄마 젖도 못 빨아보고

인큐베이터 속에서 죽었어요.

엄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엄마 얼굴도 못 보고,

엄마 집에도 못 가보고요.

인간들의 부주의로 제천에서도

많은 사람이 죽었고.

슬프고 마음이 아파요.

 성모님께서 열 달 동안

어떤 태교를 하셨을까요?

분명히 예수님도 엄마

뱃속에서 열 달 계셨죠.

그 어린 나이에 그 큰 사명을

받고 배는 점점 불러오는데,

인간적으로는

불안하셨을 것에요.

거룩한 두려움이라고

어저께 얘기했어요.

‘성령의 힘으로 잉태된

뱃속의 아기가 정말로 메시아일까?’

이런 분심도 언뜻언뜻 지나갔겠죠?

그 어린 소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분명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성모 마리아는

두 개의 태교만은 분명히 하셨어요.

첫 번째는 순명의 태교를 하셨고,

두 번째는 기도의

태교를 하셨을 것입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태교는 내 안에 생명주신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뭐였을까요?

 ‘당신 뜻대로 하소서.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여러분은 성찬례 후에

주님을 영하시죠.

그러면 주님이 여러분의

몸 안에 들어오시는 겁니다.

성모님처럼 예수님을

잉태하는 겁니다. 맞습니까?

성체를 영한 후

우리가 해야 하는 기도는,

‘주님 당신의 뜻대로 저를 쓰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영성체

후에 분명히 태교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 태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세상에 낳아드려야 할 겁니다.

 장례 있는 집을 가는 것은 조문하기

위함이고 아기 낳은 집을

가는 것은 축하하기 위함입니다.

아기 낳은 집에 갈 때 뭘 들고 가죠?

미역 한 줄기나 기저귀를 들고 갑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 드릴

기저귀 들고 오셨어요?

무슨 선물 가지고 오셨습니까?

대축일 감사예물 몇 만 원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영적인

선물이 중요할 겁니다.

오늘 우리 성당은 앞자리에 앉아

세례를 기다리는 다섯 분의

새로운 영혼을 봉헌할 겁니다.

맞죠? 다섯 분이

세례 준비하고 계세요.

오늘 서운동 성당 신자들이

가져온 제일 큰 예물은

다섯 분의 새 영세자들입니다.

영세 받는 순간 모든 죄와 벌이

사라지고, 이제까지 지었던

모든 것으로부터

눈처럼 깨끗해져요.

이보다 더 깨끗한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예수님을 낳은 귀한 집에

초대받아 왔습니다.

우리 각자 각자가

드려야 될 선물이 무엇일까?

무엇을 가장 좋아하실까?

그것은 용서와 화해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용서 중에서, 또 화해 중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본인 자신과의 화해요

자신을 용서하는 일입니다.

미사 드리는 순간순간도

정말 미워하는 사람의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차를 처음 사서 운전 경험이

부족한 초보운전자들은

가끔 정체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늘 차 뒤쪽에 스티커를

붙여 초보운전자라는 것을

표시를 하죠.

‘초보운전’, ‘운전시작 이틀째’,

‘왕초보’, ‘나는 이유도 없이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또는 도전적으로

‘네가 알아서 피하세요.’

‘나는 절대로 옆을 못 봐요.

알아서 추월하세요.’

 가장 그 중에서 돋보이면서

묵상하게 했던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스티커는 무엇이냐?

‘당신도 초보운전자이었던

시절이 있지 않았습니까?’

 어느 누구나 인생의

초보자 시절이 있었죠.

철없던 젊은 시절에

어른에게 혼도 많이 났고,

신입생 시절도 있었고,

사회 초년생으로 실수도

많이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구리가 올챙이 적

시절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개구리였던 것처럼 교만을

떨 듯이 나는 애초부터

전문가로서 존재했었다고

착각하면서 자기 앞에

실수하는 사람이라든가

초보자들을 대할 때

다짜고짜 엄하게 대하고

 다그치고 화를 낸다면

이 얼마나 자기모순이요

자기기만이겠습니까?

초보자였던 어린 시절을

기억해보면 내 앞에서 나를

편치 않게 하는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나는 늘 전문가였던 것처럼,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면 자기모순이죠.

미워하기보다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고 하지만

용서가 사랑의 시작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사랑도

결국은 내 것이 됩니다.

 구유 안에 누워 계신

이 어린 아이를 보면서 어떻게

메시아라는 생각이 듭니까?

아기 예수님은 인성으로는

초보자적인 삶을 시작하신 겁니다.

아기 예수님은 울며

보채지 않으셨겠습니까?

메시아이셨기 때문에 엄마

뱃속에서 나오면서부터 주변

사람에게 강복을 주셨겠습니까?

그리고 하느님께서 가라사대

하시며 복음을 선포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여느 아이처럼 앙앙대고 울었고,

엄마 젖 찾았고, 배고프면 소리

질렀을 것입니다.

그 어린 아이 예수님의 모습에서,

그 안에 큰 메시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감히 못하는 겁니다.

 내 앞에서 나에게 상처를 주는

 그 사람에게서 내 초보시절의

모습을 발견해 내야 합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초보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먹는다고 하여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우리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의 인생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늘 술에 절어 있고,

또 바람도 많이 피워

가족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또 힘들어 하는 엄마를 보며,

‘난 이 다음에 크면

우리 아버지처럼 안살아.

정말 내 아내 아끼고,

주사 안 부리고 살아.’

그런데 그 자식이 커서

놀랍게도 제 아버지가

산 것처럼 똑같은 짓을

하고 삽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핀 것은 바람이지만

자식은 태풍을 피고 다닙니다.

 내가 싫어하는 모습은 내가

 받은 상처가

드러나는 것일 겁니다.

태아 때부터 아이들은

상처를 받는다고 그러지요?

그 사람의 인성은 살면서

커서 주고받으며 결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 뱃속에서부터 얼마나

사랑을 먹고 자라는지,

미움과 분노를 먹고

자라는지에 달려 있다합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초보자입니다.

초보자인 내 자신이 나에게

실수 한 번 더 하는 사람에게

손가락질 할 자격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영원히 초보자입니다.

 오늘 새 영세자들은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날 겁니다.

이제껏 살아온 삶 가운데

어떤 어둠이든 하느님께서는

전혀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을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깨끗하게

오늘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초보자로서

발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새 영세자들은

혼란스럽고 뭔가 분별이

 안 될 때는 전통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무시하고는

절대 우리들은 초보자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약삭빠르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결국에 승리하는 사람은

약삭빠른 사람이 아니라

우직한 사람입니다.

 갈라티아서 6장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

영적인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를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율법을

완수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누가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나 되는 듯이 생각한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구유에 놓인 예수님은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초보자입니다.

그러나 저 안에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가 계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저 아기를 존경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 인성 속의

 여러 가지 어두움 때문에,

약점도 있고, 늘 실패하고 걸려

넘어지는 부분도 많지만,

우리가 성체를 영할 때 마다

말씀을 받아들일 때 마다

우리는 예수님이 쓰실 수 있는

그야말로 작은 빗자루,

작은 몽땅 연필이 되어서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

 은혜 속에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겸손하게 그리고 주님의 삶을

닮도록 애쓰도록 합시다.아멘.

2017년 주님 성탄 대축일

(12/25)

서운동성당 김웅열

(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서운동성당 - 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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