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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24 조회수2,205 추천수9 반대(0)

한 완상님의 예수 없는 예수교회를 읽었습니다. 독실한 교인이면서 민족의 하나 됨을 꿈꾸었던 지식인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참된 평화는 약자인 염소가 강자인 사자의 주식을 먹는 것이 아니고, 강자인 사자가 약자의 주식을 먹는데서 이루어진다.” 저자는 이 꿈은 이사야 예언자가 먼저 말했다고 합니다. “그날이 오면 사자가 어린이와 함께 뒹굴고, 암소와 곰이 나란히 걸으며, 늑대와 어린양이 같은 풀을 먹으리라.”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아니라 역지식지(易地食之)에서 꿈은 현실이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같은 꿈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성령이 나에게 오셨다. 묶인 이는 풀어주고, 갇힌 이는 열어주고, 억눌린 이는 자유를 주고, 억울한 이는 위로를 주고,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희망을 주라고 하셨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은 바로 강자인 하느님께서 약자인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이고, 인간의 언어로 말을 하고, 인간인 우리처럼 생각하고 먹고 마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실천하셨고, 예수님의 이런 삶이 복음이 되었습니다.

 

강자인 사자가 약자인 염소처럼 풀을 먹기 위해서는 체질 개선을 해야 합니다. 달콤한 유혹도 물리쳐야 합니다. 불편함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래야만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공생활 3년 동안 선포하신 복음이고, 이것이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신 새로운 가르침입니다. 다만 제자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였고, 이해는 했어도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머리로는 이해했어도, 몸으로는 따르지 못했습니다. 역지식지(易地食之)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일 년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의 총량은 태양이 하루에 90분 정도 주는 에너지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부족해서 갈등과 분쟁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에너지가 부족해서 가난과 질병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역지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이 세상의 곳간에 더 많은 것을 채우려는 우리의 욕망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는 신부님들과 모임이 있었습니다. 저녁을 함께 하면서 열띤 토론을 하였습니다. 토론의 주제는 사목에 대한 평가였습니다. 평가를 하자는 신부님들은 몇 가지 이유를 이야기 했습니다. 첫째는 사목을 좀 더 열심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평가를 받으면 자신이 사목을 잘하고 있는지,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 스스로를 위한 자기 개발은 잘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본당과 신자 공동체를 위해서입니다. 열정과 신념을 갖춘 사제가 함께하는 본당 공동체는 더 많은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목적인 재능을 평가하면 특수사목과 같은 곳으로 파견하기도 좋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사제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평가를 받지 않으면 나태해질 수 있고, 현실에 안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회와 본당 공동체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뼈를 깎는 노력과 각성이 필요합니다. 사목에 대한 평가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사제는 온전히 교회를 위해서, 복음 선포를 위해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목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우려를 하는 신부님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평가를 할 수 있는지를 걱정하였습니다. 사목에 대한 평가는 주교님들의 몫이고, 주교님들께서 하실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제와 본당 공동체의 인격적인 만남을 어떻게 구체적인 수치로 정할 수 있는가를 걱정하였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목자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걱정하기도 하였습니다. 평가 받는 것에 대한 압박감과 두려움도 이야기 하였습니다. 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라는 생각을 하지만 교계제도는 피라미드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목을 평가한다는 것은 권위에 대한 도전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열띤 토론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열매를 맺는 농부를 이야기 하시는 것 같습니다. 농부가 자갈밭을 옥토로 바꿀 수 있다면, 가시덤불을 뽑아낼 수 있다면, 길가를 밭으로 만들 수 있다면 분명 씨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씨는 그 안에 생명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들 마음의 밭에 뿌려졌습니다. 말씀이 결실을 맺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들 마음의 밭이 비옥해야 합니다. 우리들 마음의 밭에 기도의 비료를 뿌려야 합니다. 사랑의 물을 주어야 합니다. 친절과 온유, 겸손과 나눔의 하우스를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느님 말씀은 우리들 마음의 밭에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수십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나와 가족은 물론 이웃과 세상을 환하게 밝혀줄 수 있는 말씀의 열매들이 전해 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 마음의 밭을 가꾸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역시 역지식지의 마음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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