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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1.2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25 조회수1,856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1월 25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제1독서 사도 22,3-16

그 무렵 바오로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3 “나는 유다 사람입니다.

킬리키아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지만 이 도성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모두

그렇듯이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4 또 신자들을 죽일 작정으로

이 새로운 길을 박해하여,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포박하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5 대사제와 온 원로단도

나에 관하여 증언해 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동포들에게 가는 서한까지

받아 다마스쿠스로 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 처벌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런데 내가 길을 떠나

정오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7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8 내가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여쭙자,

그분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9 나와 함께 있던 이들은

빛은 보았지만,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소리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10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 줄 것이다.’
11 나는 그 눈부신 빛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어,

나와 함께 가던 이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갔습니다.

12 거기에는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따라 사는

독실한 사람으로, 그곳에

사는 모든 유다인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13 그가 나를 찾아와 앞에 서서,

 ‘사울 형제, 눈을 뜨십시오.’

하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뜨고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14 그때에 하나니아스가

 말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15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16 그러니 이제

무엇을 망설입니까?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복음 마르 16,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사람들이 종종 왜 신부님이

되었느냐는 질문을 하십니다.

이 질문에 주저 없이 하는

대답이 있습니다.

저는 과연 뭐라고 할까요?

‘하느님의 특별한 계시를 받아서?’,

 ‘하느님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보람 있게 살기 위해서?’,

 ‘뭐 특별하게 할 것이 없어서?’

등등의 대답이 있겠지만

어떤 것도 저의 대답과는

다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지요.
“어쩌다보니....”
진짜로 어쩌다보니

신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직접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특별한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또 열심히 기도와 묵상을

하던 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모범적으로 살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신부가 되었습니다.
묵상 중에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이 주님 아니면

할 수 없었음을 깨닫습니다.

신부가 될 수 없는 이유들이

그렇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신부로 살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은 주님의 특별한

은총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행복하게

신부로 살고 있습니다.
뜻밖의 일들이 계속

주어지는 삶입니다.

 내 뜻대로 돌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겠지만 그렇게

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사랑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아닐까요?

주님 아니면 불가능한 일들이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주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사랑으로

‘어쩌다보니’ 또 다른 모습이

되어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맞이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과연 자신의

회심을 상상이라도 했을까요?

요즘 시대의 말로 그를

표현한다면 대단한 스펙을

안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도록 교육받은 철저한

바리사이였지요.

그리고 대단한 출신한 배경을

 안고 있었고 여기에 그의

 열정이나 의지 역시 대단했습니다.

이러한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그러한 그가 정반대의 길로

돌아서서 주님을 세상에

알리는데 앞장섭니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저의 경우처럼 그 역시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의지로 특히

주님의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측면에서

보게 되면 그 모든 것이

 ‘어쩌다보니’ 된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집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때 내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 주님 말씀처럼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는데

앞장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나이 들어야만

 생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더 많이 알게 되지요.

(알리스 헤르츠좀머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

(‘따뜻한 하루’ 중에서)

미국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에머슨은 집에서

기르는 송아지가 외양간을

나와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보고

송아지를 붙잡았습니다.

하지만 어린 에머슨의 힘으로는

아무리 밀고 당겨보아도 송아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에머슨은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해 한 사람은 밀고

한 사람은 당겨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송아지는 비록 작아 보이지만

한두 명의 힘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

연세 많은 할아버지지 다가와

자신의 손가락을 송아지 입에

물려주었습니다.

송아지는 젖을 빨듯이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손가락을 물린 채로

 천천히 외양간으로 들어가자

송아지는 할아버지를 따라

외양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했던

에머슨은 어떻게 그렇게

간단하게 송아지를

유인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송아지는 잠시 자기

어미의 젖을 물고 있다고

착각을 한 거지.

자기를 사랑해주는 어미가

이끄는 곳이라면 어디든

함께 따라가기 마련이란다.”
사랑의 힘에 의해 움직여지는

이 세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나를 통해서도

이 사랑의 힘은 계속 작동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의 힘을

과연 어디에 쓰고 있을까요?

성바오로 대성당의 바오로사도 동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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