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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1.2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27 조회수1,655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8년 1월 27일

연중 제3주간 토요일

제1독서 2사무 12,1-7ㄷ.10-17

그 무렵

1 주님께서 나탄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나탄이 다윗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이고

다른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2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매우 많았으나,

3 가난한 이에게는 자기가

산 작은 암양 한 마리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는 이 암양을

길렀는데, 암양은

그의 집에서 자식들과

함께 자라면서,

그의 음식을 나누어 먹고

그의 잔을 나누어 마시며

그의 품 안에서

자곤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이 암양이

딸과 같았습니다.

 4 그런데 부자에게

길손이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나그네를 대접하려고

자기 양과 소 가운데에서

하나를 잡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잡아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대접하였습니다.”

 5 다윗은 그 부자에

대하여 몹시 화를 내며

나탄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그런 짓을 한 그자는

죽어 마땅하다.

6 그는 그런 짓을 하고

동정심도 없었으니,

그 암양을 네 곱절로

갚아야 한다.”
7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무시하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

11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거슬러

너의 집안에서 재앙이

일어나게 하겠다.

네가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너의 아내들을

데려다 이웃에게

넘겨주리니,

저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너의

아내들과 잠자리를

같이할 것이다.

12 너는 그 짓을

은밀하게 하였지만,

나는 이 일을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 앞에서,

그리고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할 것이다.’”
13 그때 다윗이 나탄에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하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임금님께서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14 다만 임금님께서

이 일로 주님을 몹시

업신여기셨으니,

임금님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반드시

죽고 말 것입니다.”

15 그러고 나서 나탄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께서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아 준 아이를 치시니,

아이가 큰 병이 들었다.

16 다윗은 그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님께

호소하였다.

다윗은 단식하며 방에

와서도 바닥에

누워 밤을 지냈다.

17 그의 궁 원로들이

그의 곁에 서서

그를 바닥에서

일으키려 하였으나,

그는 마다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복음 마르 4,35-41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전래 동화 중에서

‘해님 달님’이라고 있지요.

이 동화를 약간 변형한

 이야기를 우연히

인터넷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적어봅니다.
옛날에 떡 장사를 하던

어느 나그네가 산길을

가다가 아주 무서운

호랑이를 만난 것입니다.

이 호랑이는 이 나그네의

봇짐 안에 떡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이렇게 말합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그래서 떡 하나 주었지만

계속 요구하는 통에

가지고 있던 떡을

모두 주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떡만으로는

자신의 시장함을

채울 수가 없었는지

이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팔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목숨이라도 부지해야겠기에

팔 한 쪽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부족했는지

다른 쪽 팔도 달라고 해서

주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그네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나그네는 억울했습니다.

호랑이 말대로 다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졌지요.

그러자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나는 늙어서 이빨도

 또 발톱도 없다네.

 만약 자네가 맞서 싸웠더라면

 나는 힘도 못쓰고 도망쳤을 거야.

그런데 자네는 미리 두려움에

휩싸여서 자신의 소중한 것을

다 주더구먼.”
농작물을 쪼아 먹는 새들을

쫓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이나

 동물 모양을 만들어 논밭에

세워 두는 조형물인 허수아비를

생각해보십시오.

새들은 허수아비 근처에

잘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몇몇 용기 있는

새들은 몇 번의 시도 끝에

 이 허수아비가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음을 깨달으면서

허수아비의 어깨 위에도 앉고,

허수아비 바로 옆의

농작물을 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허수아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새들은

근처에 오지도 못합니다.
우리도 두려움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내 자신의 소중한 것을

모두 내려놓고서 포기하고

좌절에 빠지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서 예수님을 깨웁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한 마디로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하게 하시지요.

그리고는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주님과 함께라면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주님의

놀라운 기적들을 보면서

 메시아 구세주임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두려움 속에

있었던 것은 아직 굳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헛된 두려움으로 인해 너무

쉽게 절망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삶과 꿈, 사랑과 열정은

 두려워하는 만큼

저 멀리 달아나고,

믿는 만큼 가까이 다가온다.

의심하는 만큼 물러서고,

확신하는 만큼 다가온다.

(위서현)

허수아비는 무섭지 않습니다.

"진정한 변화"

네덜란드의 한 도시는

사람들이 함부로 버리는

쓰레기 때문에 늘 골치였습니다.

사람들이 버리지 못하게 하려고

벌금을 더 올렸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지요.

그때 한 사람이 이러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글쎄 쓰레기를 버리면

벌금이 아니라 포상을

하자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면, 쓰레기통에서 멋진

유머가 담긴 말이나 노래

그리고 칭찬의 말이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재미있기도 하고

 또 칭찬 등의 긍정적인 말을

들으면서 기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거리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쓰레기통에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또한 네덜란드의 한 축제 때

 쓰인 쓰레기통 '위컵(Wecup)'

도 유명합니다. 일명

 ‘투표하는 쓰레기통’으로

유명합니다.
위컵 위에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마이클 잭슨이 돌아왔으면 좋겠다.’와

 같은 질문들이 쓰여 있고,

쓰레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 쪽으로

 쓰레기를 버리면서 투표하는 것입니다.

이는 '쓰레기를 즐겁게 버리자'라는

좋은 취지에서 도입된 것으로 생각보다

경쟁이 치열해 땅에 떨어진

쓰레기를 직접 주워다 버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벌금이라는 두려움을 줘서

 변화를 시도하는 것보다,

즐거움을 통해 더 큰 변화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두려움이라는 부정적인 말에

 집중하기보다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말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쓰레기통.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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