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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7.강론."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27 조회수1,583 추천수0 반대(0) 신고

 

 

마르 4,35-41(연중 3 )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등불의 비유’,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서 하늘나라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그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마르 4,35)

 

 저녁이 되어 어둠이 닥쳐오는데도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저쪽으로 건너가는 일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도 저녁이었습니다. 그리고 건너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새로운 출애굽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어둠을 가르고 나아가는 이 여행에 거센 돌풍이 일고,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쳤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가지만, 동시에 온갖 환란과 위험과도 함께 갑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제자들의 위험에 수수방관으로 그냥 침묵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죽게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냉정하신 예수님의 이러한 냉혹한 처사에 당혹스럽고 저항감마저 생깁니다.

예수님의 이 침묵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

 

 냉정하게 눈길조차 보내지 않으시고, 아니 눈 하나 깜빡이지 않으시고 나 몰라라 무관심한 예수님의 침묵, 이 침묵의 순간이 한편으로는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이지만, 동시에 믿음이 요청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사실 풍랑 속에서 주무신다는 것은 아버지께 대한 전적인 신뢰를 나타냅니다. <시편> 작가는 노래합니다.

자리에 들자마자 단잠이 깊사오니 든든히 살게 하심 홀로 주님 덕이오이다.”(시편 4,9)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전적으로 아버지께 신뢰를 두고 계시는 당신의 모습을, 당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실, 잠들어 있는 이는 예수님이 아니라, 바로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현존에 깨어있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이 바로 잠들어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불신에 잠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막상 깨어나야 할 이들은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0)

 

 우리는 때때로 하느님께서 우리의 청에 응답해주지 않으신다고 투덜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가 우리가 잠들어 있을 때임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바로 그 때가 우리가 불신에 떨어져 있을 때요, 현존하신 그분께 믿음으로 응답해야 할 때임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바로 그 때가 현존하신 그분께 믿음으로 응답해야 할 때요, 시편작가처럼, 만군의 하느님, ~주님은 능하시고 진실에 쌓여 계시오니, 뒤끓는 바다를 호령하시고 솟구치는 물결을 붙잡으시는 분(88,9-10)이심을 고백하고 믿음으로 의탁해야 할 때임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당신께서 함께 계시며 동행하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불신을 깨우쳐주시고, 당신께서 하느님이심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마르 4,39)하시며 광풍을 잠재웁니다. 우리의 온갖 두려움과 걱정, 불신을 잠재우시고, 믿음의 생명으로 깨우십니다. 출애굽을 통해 어둠을 건너, 새로운 생명으로 이끄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침묵은 그분이 안 계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나를 믿고 계신다는 것을 뜻일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 십자가에서의 아버지의 침묵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과 신뢰가 바로 예수님께서 그 거센 돌풍 속에서도 간직할 수 있었던 평화입니다. 그러니, 믿음과 신뢰가 곧 평화인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0)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깨우치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시편>작가처럼 함께 계시는 주님께 믿음의 노래를 부릅니다.

주님, “비록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 해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나이다.”(22,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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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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