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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1.2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28 조회수1,366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1월 28일
연중 제4주일
제1독서 신명 18,15-2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5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16 그것은 너희가 호렙에서
집회의 날에 주 너희 하느님께
청한 것이다. 그때에 너희는
이렇게 말하였다. ‘다시는
저희가 주 저희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않게 하시고
이 큰 불도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
17 그러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한 말은 옳다.
 18 나는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동족 가운데에서 너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일러 줄 것이다.
19 그가 내 이름으로 이르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내가
직접 추궁할 것이다.
20 또한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도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가 있으면,
그 예언자는 죽어야 한다.’”
제2독서 1코린 7,32-35
형제 여러분,
32 나는 여러분이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혼인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33 그러나 혼인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34 그래서 그는 마음이
갈라집니다. 남편이 없는
여자와 처녀는 몸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혼인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35 나는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 마르 1,21ㄴ-28
카파르나움에서,
 21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24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하고 꾸짖으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을
보면서 대신 아파줄 수 없습니다.
이 사실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면서
종종 ‘차라리 내가 아프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괴로워한다면 상대방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
‘내가 더 잘 챙겼더라면...
내가 더 잘 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들 아픈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러한 예를 하나 들어봅니다.
급한 마음에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뛰어가다가 어떤 분과
부딪쳐서 그분이 들고 있던 짐이
바닥에 모두 떨어졌습니다.
너무나 미안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도망쳤습니다.
대신 계속해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분이 상처받지 않도록 해주세요.’
이렇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했으니까 괜찮다고 할까요?
아닙니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계속해서 불편한
마음에 힘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망가지 않고 얼른 그의 짐을
정리해주고는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바로 그 순간 죄책감은
사라질 것입니다.
맞습니다. 생각만으로는 문제의
원인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바로 행동을 할 때에 문제의 원인이
사라질 때가 더욱 더 많습니다.
이는 우리들이 자주 범하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종종 제게 사람들과의 관계가
너무 힘들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미움이 너무 커서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나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견디기 힘들다고... 등등 도저히
그 관계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면 제가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다면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뜻밖의 질문이었는지
 한참을 생각하십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세요.
“기도밖에 없지요.”
정말로 기도밖에 문제의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일까요?
앞서 누군가 부딪쳤을 때
미안하다는 마음을 갖고
기도만 하면 죄책감이
해결되던가요?
 아닙니다.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행동을 통해서
문제가 해결됩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예수님께 소리를
지르며 말합니다.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마르 1,24)
이때 예수님의 대답은
어떠하셨나요?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마르 1,25)라는
꾸짖음이었습니다.
사실 어렵고 힘든 상황이
처해졌을 때
‘왜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저를 완전히
멸망시키려는 것입니까?’
라는 우리의 기도와
 비슷합니다.
바로 악의 유혹에
빠져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1독서는 “그가 내 이름으로
이르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내가 직접 추궁할 것이다.”
(신명 18,19)라고 강한
어조로 우리에게 말합니다.
따라서 침묵 안에서 기도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노력하고
동시에 그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주님께서는 더러운 영도
복종하는 권위를 가지고
계신 분이시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하면서 행동한다면 못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종종 생깁니다.
그런데 불안의 모양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불안은 진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시각일 뿐입니다.
따라서 권위를 가지고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 뜻에 맞는
행동을 한다면 분명히 그 불안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 모두가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십니다(1코린 7,32 참조)
그래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 7,35)
 생각만으로는 어떤 걱정과 불안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충실히 섬길 수 있는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것도 당신을
불안하게 하지 못하며,
어떤 것도 당신을 두렵게
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느님만으로 족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
갑곶 앞바다가 녹고 있습니다.
"무엇을 쫓아야 할까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건강 문제는 ‘풍요의 질병’이라고
말하는 학자가 있더군요.
비만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이 비만이 치명적인 일상 질환인
당뇨병, 심장병 등을 가져오고,
이로 인한 의료비 지출,
생산력 상실, 사망에 따른
손해액이 자그마치 매년
2조 달러에 이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많은 것을 갖는다고 해서,
즉 풍요로움이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모든 것을 가지려면 아무것도
갖지 않아야 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소유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있습니까?
풍요로움을 쫓는 삶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를 쫓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분명히 행복이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어제 새벽 성무일도를 바치다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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