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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4주일 제1독서]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신명18,15-2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28 조회수1,248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4주일 제1독서 (신명18,15-20)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15)

 


 

하느님의 말씀을 위탁받아 전하는 자기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메아헤카'(meaheka; '너희 동족(형제) 가운데에서')가 강조된 것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자는 반드시 하느님의 계약으로 맺어진 백성의 역사를 체험하고 이해하는 자여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계시를 전하는 예언자는 그 자신이 하느님의 구원 역사의 동참자이기에 누구보다 하느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는 존재이다. 또한 살아계신 하느님의 계시를 전하는 자이기에 살아계신 하느님의 뜻만을 전해야 한다.

 

모세에 의해서 백성에게 선포된 말씀은 영속적인 예언자의 계보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예언자 제도를 세우시는 주된 목적은, 혼란한 이교도의 영적인 세력에 맞서서 하느님의 분명하신 계시의 말씀을 전하시고자 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나와 같은 예언자'는 모세 자신이 행했던 예언자의 활동과 동일한 수준의 활동을 행하는 예언자의 의미가 아니고, 하느님의 대변자로서의 모습만을 가리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은 메시아의 도래를 의미한다. 신약시대에 살던 유대인이 이 예언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본문의 예언자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요한1,45; 6,14; 7,40; 사도3,20~22; 7,37).

 


 

그리고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은 단순히 귀로 듣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를 향하여 순종한다'는 뜻을 가진다. 여기서 누구를 향하여 순종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즉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가나안의 박수들이나 잡신들을 접한 자들이나 혼을 불러들이는 초혼자들의 말을 듣거나 순종해서는 안되며, 유일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의 말을 순종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호렙에서 집회의 날에 주 너희 하느님께 청한 것이다.  그때에 너희는 이렇게 말하였다.

 

'다시는 저희가 주 저희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않게 하시고,  이 큰 불도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 " (16)

 


 

탈출기 20장 19절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되자 자신들이 죽게 될까봐 하느님을 직접 만나지 아니하고, 모세가 자신들을 대신해서 만나기를 모세에게 간청한다.

 


 

"온 백성은 우렛소리와 불길과 뿔 나팔 소리와 연기에 싸인 산을 보고 있었다.  백성은 그것을 보고 떨면서 멀직이 서 있었다.  그들이 모세에게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당신이 말해 주십시오.  우리가 듣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랬다가는 우리가 죽습니다." "(탈출20,19~20)

 


 

'저희 하느님'에 해당하는 '엘로하이'(elohai) '하느님'을 가리키는 명칭 '엘로힘' 1인칭 단수 접미어가 붙은 형태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을 이처럼 '저희(나의) 하느님'으로 부르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본문이 모세 오경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자신의 개인적이며 인격적인 하느님으로 고백한 유일할 곳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호렙산에서 그들과 계약을 세우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 개개인이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증거가 된다.

 


 

'저희가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에 해당하는 '웰로 아무트'(welo amuth)앞의 두 가지 요청과 함께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나로 하여금 듣지 않고 보지 않게 하셔서 내가 죽지 않게 해주소서'이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드리는 요청이 아니라,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느님을 직접 대면하면 죽는다는, 하느님의 거룩함을 바로 인식한 자의 자연스러운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나약한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단순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경외심이다.

 


 

주님을 '나의 하느님'으로 고백한 자가 어찌 그 하느님을 오직 자기를 죽일 자로만 바라 보아야 겠는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요청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한 말은 옳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동족 가운데에서 너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일러 줄 것이다."(17~18)

 


 

'그들이 한 말은 옳다'는 것은 '그들이 한 말은 잘한 말이다'라는 뜻으로 경우에 맞는 말을 했다는 하느님의 칭찬이다.  하느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므로 중재자를 세워 죽음을 면하게 해달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는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체험한 자가 해야 할 옳은 말이라고 하느님께서 인정하신 것이다.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는 것은 단순히 모세의 입을 사용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의 입이 하느님의 말씀의 보관소가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예레미야 5장 14절에는 하느님께서 필요하실 때에 예언자의 입에 보관된 말을 꺼내어 사용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나 이제, 네 말이 너의 입에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은 장작이 되게 하여 그 불이 그들을 삼키게 하리라.'

 


 

참된 예언자는 자신의 뜻대로 예언하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말씀만을 전한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은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참 예언자임을 보이기 위해 '주님께서 말씀하신다'(이사1,18; 예레4,1)라는 관용적 표현을 사용한다.

 


 

또한 에제키엘 3장 10절에는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모두 마음에 받아들이고 귀담아 들어라'는 명령이 나온다. 이는 말씀이란, 단순히 입술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생각에까지 하느님의 말씀이 있어야 함을 알게 한다.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서 1장 9절'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는 표현은 하느님께서 직접적으로 내리시는 계시에 대한 표현일 뿐만 아니라, 예언자를 세우시고 사명을 부여하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순간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언자로 임명하시는 장면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결국 본문은 예언자라고 할지라도 자의로 말해서는 안되며, 오직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자들이 바로 예언자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다. 

 

"그가 내 이름으로 이르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내가 직접 추궁할 것이다. 또한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가 있으면,그 예언자는 죽어야 한다."(19~20)

 


 

실제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세우시고 그 입에 말씀을 주어 선포하게 하신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음으로써, 결국 이방 나라들의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예언자가 선포하는 그 말이 하느님으로부터 오지 않는 경우로는 두 가지 상황이 있음을 밝힌다.

 


 

하나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만, 전하는 내용을 자신의 마음대로 지어낸 경우이고, 다른 하나 하느님이 아닌 다른 존재로부터 받은 내용을 그 존재의 이름으로 말하는 경우이다.

 

전자는 십계명 가운데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제2계명의 내용을 범하는 것이고, 후자 우상 숭배에 관한 제1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내용을 전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여기서 '주제넘게'로 번역된 '야지드'(jazid) '끓어 오르다', '끓다'뜻이 있는'지드'(zid)동사의 사역 능동형 미완료형으로서 '주제넘게 행동하다', '건방지게 행동하다','방자하게 행동하다'란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거짓 예언자의 주제넘은 선포 행위하느님께서 결코 인정하지 않는, 자기 속에 끓어 오르는 개인의 생각을 불쑥 내미는 행동이다. 인간은 교만하기 때문에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권위를 세워 주제넘게 나서기 쉽다.

 

거짓 예언자 부르심을 받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행동하도록 권위를 부여받은 척하여 감히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자이다.

 


 

이것은 그 예언자 개인의 충동적 행동이라기 보다는, 그의 악한 영들에 의해 영향받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탈출18,11; 예레23,9~32; 에제13장). 뿐만 아니라 이러한 태도의 배후에는 종종 사람들 기쁘게 하려는 의도도 숨겨져 있다(이사30,10~11; 예레14,14~15; 미카2,11; 3,11).

 


 

오늘날 교회에 이 문제를 적용해 볼 때, 오늘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 앞에서 전하는 자들에게 매우 중대한 경고를 주고 있다강론 때나 강단에 섰다고 해서 모두 참된 설교자나 강사가 아니고, 오직 하느님께서 세우신 자만이 참된 설교자요, 강사이다.

 

따라서 모든 성직자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하느님 말씀의 봉사자들은 날마다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인간적 생각을 전하고 있지는 않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을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풀어 전하는 거짓 예언자가 당할 최후는 죽음 뿐이기 때문이다(신명13,6).

 


 

"주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이사50,4)

 


 

하느님께서 아침마다 열어 주시고 입과 귀에 하느님의 말씀을 담아 영적으로 궁핍하고 갈증을 느끼는 자들에게 그 말씀을 들려주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이런 일에 소명을 받은 자가 오늘 날 하느님의 말씀을 맡은 봉사자로서 바른 자세를 갖춘 사람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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