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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1.2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29 조회수1,10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1월 29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판관

15,13-14.30 16,5-13ㄱ

그 무렵

13 전령 하나가 다윗에게

와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쏠렸습니다.”
14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어서들 달아납시다.

잘못하다가는 우리가

 압살롬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오.

서둘러 떠나시오.

그러지 않으면 그가 서둘러

우리를 따라잡아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고, 칼날로

이 도성을 칠 것이오.”
30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

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제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계속 올라갔다.

16,5 다윗 임금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였다.

사울 집안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

그곳에서 나왔는데,

그의 이름은 게라의

아들 시므이였다.

는 나오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6 온 백성과 모든 용사가

임금 좌우에 있는데도,

그는 다윗과 다윗 임금의

모든 신하에게 돌을 던졌다.

7 시므이는 이렇게 말하며

저주하였다. “꺼져라, 꺼져!

이 살인자야, 이 무뢰한아!

8 사울의 왕위를 차지한

너에게 주님께서 그 집안의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을

돌리시고, 그 왕위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다.

너는 살인자다.

이제 재앙이

너에게 닥쳤구나.”
9 그때 츠루야의 아들

아비사이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 죽은 개가

 어찌 감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저주합니까?

가서 그의 머리를 베어

버리게 해 주십시오.”
10 그러나 임금은

 “츠루야의 아들들이여,

 그대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소?

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어느 누가‘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겠소?”
11 그러면서 다윗이

아비사이와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내 배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목숨을

노리는데, 하물며 이 벤야민

사람이야 오죽하겠소?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12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 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13 다윗과 그 부하들은

길을 걸었다.

복음 마르 5,1-20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1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은 수학자로
대성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당연히 수학 문제를
 잘 푸니까 위대한 수학자로
대성할 가능성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러나 어느 유명한 수학자는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은 수학자로 대성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수학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우수하지,
단순히 수학 문제를
풀기만으로는 수학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문제 풀이보다는 문제 제기가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 안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즉, 어떤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회는 결과만을
최고로 인정하려고 하니
자기 자신도 모르게 결과
중심주의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히 중요한 것은
과정인데 말이지요.
주님께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할지를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외면할지를 또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지를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뻔한 결과라고 하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하느님 뜻에 맞게 살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결과를
 중요하시 여긴다고 해도 뻔한
 결과라고 하면서 포기하려고
한다 해도, 우리는 그 과정이
중요함을 기억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주님과 마주하게 됩니다.
마귀들의 군대 전체가
한 사람의 몸을 차고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었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비참한 인간을 건강하게
하실 수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분명히 주님께 감사와 기쁨의
표현을 해야 할 순간입니다.
그런데 그 고장 사람들은
결과만을 생각합니다.
 즉, 마귀들이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들이 모두 호수에 빠져
죽는 물질적인 피해를 보면서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마귀들이 돼지들 속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청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차피 주님으로부터
쫓겨나겠지만 어떻게든
주님과 사람들이 갈라지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바로 물질적인 피해라는
결과를 통해 사람들은
주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 지를
늘 묵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물질적이고 세
속적인 기준을 따져서
 결과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준에 맞춰서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위바위보는

이기기만 하는 패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기만 하는 패도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입니다.

(조정민)


어제 잠시 들린 인천교구 상3동성당.

"사는 것이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최천호)

어쩜 나 혼자 이런 시련을

 당하고 있는지 라는 생각이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뒤를 돌아본다면

우리는 참 많은 시련을

잘 이겨내어 왔답니다.
지금 당장 얼굴이 굳어진

채로 지낸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진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장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당신의 시련이 달라지거나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그런 상태일수록 웃으며

차근차근 하나씩 그 매듭을

풀어보세요. 언제 그 많은

매듭이 풀려지라고 생각을

한다면 더 답답할 것입니다.
생각을 너무 앞질러 하지 마세요.

다만, 앉은 채로 하나씩

풀어 보는 겁니다.

언젠가는 신기하게도 그 매듭이

다 풀어져 있을 겁니다.
당신은 잘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기에

우리는 모두 잘 할 수 있습니다.

꽃이 피리라고 예상못했는데...

다육이에 꽃이 피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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