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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미사 강론]리마의 라스팔마스 공군 기지에서 페루 여정 미사[2018년 1월 21일 주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29 조회수1,304 추천수0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s://www.vaticannews.va/en.html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7.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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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8121일 주일[연중 제3주일]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요나 예언서 3,1-5.10

화답송 : 시편 25(24),4-5ㄱㄴ.6 7ㄴㄷ.8-9( 4)

2독서 : 코린토 1 7,29-31

복음 : 마르코 복음 1,14-20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8585&gomonth=2018-01-21&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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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wds at Las Palmas Air base in Lima


리마의 라스팔마스 공군 기지에서 페루 여정 미사

리마의 라스팔마스 공군 기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

 

http://www.vaticannews.va/en/pope/news/2018-01/peru-journey-mass-at-las-palmas-airbase-lima-full-text.html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요나 예언서 3,2). 주님께서 요나에게 하신 이 말씀, 너무나 많은 죄악들로 곧 파괴될 저 큰 성읍으로 요나를 이끄셨던 말씀으로. 복음에서 우리는 또한 갈릴래아에 가시어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봅니다.(마르코 복음 1,14 참조). 두 말씀은 과거와 현재에 도시들로 눈길을 돌리시는 하느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정을 떠나십니다. 니네베로, 갈릴래아로, 리마로, 트루히요로 푸에르토 말도나도로주님께서 여기로 오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역사들로 들어오시려고 길을 떠나십니다. 우리는 얼마 전에 이 일을 경축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임마누엘,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기를 원하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리마에서 또는 여러분이 살고 있는 곳 어디서나 매일 여러분의 생활과 일의 일상 속에서 여러분의 아이들에게 하는 교육 속에서, 여러분의 열망과 근심 속에 오십니다. 바로 집이라는 개인적인 공간으로,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우리 거리의 소음 안으로 오십니다. 먼지 투성이 역사의 길을 따라 주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러 오시는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때때로 요나에게 일어났던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도시들, 고통과 정의롭지 못한 상황들이 매일 있는 우리들의 도시들은 우리가 도망가고 숨고 달아 나라는 유혹을 받도록 놓아 둡니다. 요나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할 수많은 구실들을 갖고 있습니다. 도시를 바라보면 개인과 가족의 삶을 발전시키는 적합한 수단들을 발견한 시민들이 있고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기쁘게 하고-그러나 문제는 수많은 시민이 아닌 시민들”, “절반만 시민인 시민들또는 도시의 잔재들이라고 말하면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도시의 변방에 살면서 고귀한 존재를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결여된 채로 그들은 우리들의 길가에서 발견됩니다. 이 모든 도시의 잔재들가운데에서 우리가 너무나 자주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본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얼굴을 봅니다. 

 

만남의 장소여야 하고 연대와 기쁨의 장소여야 하는 우리의 도시에서 우리의 이웃에서 이러한 일들을 보면서 우리는 결국 요나 신드롬이라고 부를만한 것에 봉착하고 맙니다. 우리는 낙담하고 달아나고 싶어합니다.(요나서 1,3 참조). 우리는 무관심해 지고 그리고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익명이 되고 귀를 막게 되고 차가와지고 마음이 완고해집니다. 이런 일이 일어 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베네딕트 16세가 지적했듯이 인간애의 진정한 척도는 본질적으로 고통과 고통을 받는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결정된다고통 받는 구성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나누도록 돕지 못하고, 내면적으로 연민을 통해서 그것을 견뎌내도록 돕지 못하는 사회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사회이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요나와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그 도시에 들어가심으로써 요한 잡혔다는 고통스럽고 정의롭지 못한 뉴스에 대해 반응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갈릴래아로 들어 가셔서 그 작은 도시로부터 위대한 희망의 씨앗을 이렇게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 복음은 그 자체가 우리에게 기쁨을 보여 주고 이 복음이 불러 일으키는 잔물결 효과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시몬과 앤드류로 시작해서 그리고 나서 야고보와 요한입니다(마르코 복음 1,14-20 참조). 그것은 그분을 위한 수많은 증인들에 의해 선포되면서 그렇게 리마의 성녀 로사(Saint Rose de Lima)와 성 투리비오(Saint Turibius),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Saint Martin de Porres), 성 조반니 마르시아스(Saint Juan Macías), 성 프란치스코 솔라노(Saint Francisco Solano)를 지나 우리에게 내려왔습니다. 복음은 무관심의 글로벌화에 대한 시의 적절한 해독제로서 다시 한번 활동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분의 사랑을 마주 대하고 아무도 무관심한 채로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현재에 영원을 맛보는 경험을 하라고 초대하십니다. ,하느님과 이웃의 사랑. 그분께서는 그분이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하느님의 방법으로 즉 자애하심과 자비의 사랑을 일깨움으로써 연민을 일깨우시고 하느님께서 하신 실체를 보도록 그들의 눈을 엶으로써 이것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과 그 도시를 걸으십니다. 그리고 보기 시작하시고 듣기 시작하시고 부패라는 중대한 죄로 인해 몹시 허약해진 무관심에 직면하여 포기한 사람들을 알아보시기 시작하십니다. 그분께서 그분 백성의 희망을 죽여 왔던 수많은 상황들을 빛으로 데려가기 시작하셨고 새로운 희망을 일깨우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도시를 걸으라고 하지만 다른 걸음으로 걸으라고 그들을 부르십니다. 즉 그분께서는 그들이 전에 간과했던 것들을 깨달으라고 그들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새롭고 긴급한 요구를 하십니다. 회개, 그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예수님 안에서 그분 백성의 삶에 개입되신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께서는 개입되셨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 역사 구원의 역사를 만들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개입하도록 하십니다(마르코 복음 1,15,21).

 

예수님께서 계속 우리의 거리를 걸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어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문과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몰락은 형제애로 극복될 수 있으며 정의롭지 못함은 연대로 이겨낼 수 있으며 폭력은 평화의 무기로 잠재울 수 있다는 희망과 열망에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분께서 그분의 영으로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또한 상처 받은 희망들을 치유할 수 있는 기름과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법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기름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부어 주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속 걸으시며 희망을 일깨우십니다. 우리를 공허한 교류에서 그리고 비인간적인 분석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희망입니다. 그분께서 우리가 있는 곳으로, 우리가 사는 곳으로 우리 일상 생활의 모든 곳으로 누룩처럼 들어가라고 격려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자그마한 사랑과 연민을 보여 주기 위해서 싸우는 곳 어디든지, 우리가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걷고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듣는 자리를 마련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루카 복음 7, 22 참조) 그리하여 우리가 죽었다고 포기한 모든 이들이 부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곳 어디든지 바로 그곳이 하늘 나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그분의 자녀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시는 일에 지치지 않을 것입니다. 예언자가 부족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희망에 불을 붙이겠습니까? 일치가 부족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마주 대하겠습니까? 대범하고 용감한 증인이 부족하다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저 모든 곳에 가 닿으시겠습니까?

 

오늘 주님께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도시 안에서 여러분의 도시 안에서 그분과 함께 걸으라고 부르십니다. 여러분이 당신의 선교 제자가 되어서 여러분이 우리 삶의 다른 곳마다 계속 울려 퍼지기를 바라는 저 위대한 속삭임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여러분을 초대하십니다.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2018 121 20 58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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