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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31 수/ 익숙함과 굳어진 틀을 내려놓고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30 조회수1,592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4주 수, 마르 6,1-6(18.1.31)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마르 6,6)





The Rejection at Nazareth


 



익숙함과 굳어진 틀을 내려놓고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병자를 고쳐주시며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이에 사람들은 몹시 놀랍니다(1,22; 2,12; 7,34-37). 그러나 율법학자들은 그분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시자 의아하게 여기며 신성모독 행위로 판단해버립니다(2,7-8).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고향 나자렛에 가시어 안식일에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자 많은 이들이 놀랍니다(6,2). 그러나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의 출신배경과 친인척 관계, 직업 등에 묶여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6,3).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나 예언자로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습니다."(6,5) 고향사람들이 그분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곳엔 기적도 없는 법이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을 놀라게 한 나자렛 사람들의 불신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나자렛 사람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시각과 경험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익숙함에 젖어 '지금 여기서' 드러나는 창조의 새로움을 만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으나 전혀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관해 자신들이 알고 있던 과거의 지식에 갇혀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지요. 한마디로 그들을 불신으로 내몬 것은 과거의 틀이었습니다.

불신은 교만과 그릇되고 고착된 신념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주인으로 여기지 않는 교만은 어김없이 불신의 늪에 빠지게 합니다. 또 자기 신념에 집착하여 충분한 근거도 없이 다른 사람을 나쁘게 보고 차별하고 비방하며 반감을 가지는 신념고착 또한 불신의 뿌리입니다. 신념과 편견 및 고정관념은 모두 태도나 생각을 경직시켜 불신을 불러일으키지요.

또한 겉모습과 외적 조건에 애착을 둘수록 주님과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틈을 비집고 불신이 끼어드는 것이지요. 누구든지 인간적인 조건이나 능력, 출신 배경과 환경, 학벌과 외모 등에 따라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뜬 소경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근심걱정 또한 하느님을 향한 영혼의 밑바닥을 뒤흔들어 불신을 낳습니다.

우리 모두 과거의 경험과 지식의 틀에 매이지 말고, '지금, 여기'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새로움과 메시아의 구원활동을 알아차려야겠습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서 생명의 기적, 사랑의 기적을 이루실 수 있도록(6,5)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고정관념을 버리고 믿음의 끈을 붙들어야겠지요.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계시는 주님을 보며 경탄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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