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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1.3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31 조회수1,827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8년 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제1독서 2사무 24,2.9-17

그 무렵 다윗

2 임금은 자기가 데리고 있는

군대의 장수 요압에게 말하였다.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두루 다니며

 인구를 조사하시오.

내가 백성의 수를 알고자 하오.”

 9 요압이 조사한 백성의 수를

임금에게 보고하였는데,

 이스라엘에서 칼을 다룰 수

있는 장정이 팔십만 명,

유다에서 오십만 명이었다.
10 다윗은 이렇게 인구 조사를

한 다음, 양심에 가책을 느껴

주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이런 짓으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당신 종의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

제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11 이튿날 아침 다윗이

일어났을 때, 주님의

 말씀이 다윗의 환시가인

가드 예언자에게 내렸다.

12 “다윗에게 가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면서 일러라.

‘내가 너에게 세 가지를

내놓을 터이니,

그 가운데에서

하나를 골라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
13 가드가 다윗에게

가서 이렇게 알렸다.

“임금님 나라에

일곱 해 동안 기근이

드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임금님을 뒤쫓는

적들을 피하여 석 달 동안

도망 다니시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임금님 나라에

사흘 동안 흑사병이

퍼지는 것이 좋습니까?

저를 보내신 분께

무엇이라고 회답해야 할지

지금 잘 생각하여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14 그러자 다윗이

가드에게 말하였다.

“괴롭기 그지없구려.

그러나 주님의 자비는 크시니,

사람 손에 당하는 것보다

주님 손에 당하는 것이 낫겠소.”
15 그리하여 주님께서 그날

 아침부터 정해진 날까지

이스라엘에 흑사병을 내리시니,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 백성

가운데에서 칠만 명이 죽었다.
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파멸시키려고 그쪽으로

손을 뻗치자, 주님께서

재앙을 내리신 것을

후회하시고 백성을 파멸시키는

천사에게 이르셨다.

“이제 됐다. 손을 거두어라.”

그때에 주님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있었다.
17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다윗이 주님께 아뢰었다.

“제가 바로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못된 짓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양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러니 제발 당신 손으로

저와 제 아버지의

 집안을 쳐 주십시오.”
복음 마르 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오늘은 분위기 있게

시 한 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라이너 쿤체의 ‘두 사람’이라는

시입니다.
두 사람이 노를 젓는다.

한 척의 배를
한 사람은 별을 알고,

한 사람은 폭풍을 안다.
한 사람은 별을 통과해

 배를 안내하고,

한 사람은 폭풍을

통과해 배를 안내한다.
마침내 끝에 이르렀을 때,

기억 속 바다는

언제나 파란색이리라.
결혼 축시로 자주

낭송되는 시입니다.

한 배를 탔다는 것은

같은 운명 공동체라는 사실을,

별은 목적지, 폭풍은 그곳에

는 여정에서 부딪치는

예기치 않은 일들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즉,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으면 삶의 여정 안에서

고통과 시련의 순간을

잘 이겨내면서 아름다운

삶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희망과 기쁨을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혼자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마치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착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화를

내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모습 등이

바로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운명 공동체로서,

함께 고통과 시련이라는 폭풍을

이겨내면서 아름다운 별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고향을 방문하신 예수님께서는

뜻밖에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하는 분이 아니라,

배척해야 하는 분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기적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서의 기적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나만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주님께서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놀라운 일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 주변의 사람들

역시 내가 믿을 대상이고,

내가 함께 해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아닌, 진정으로 함께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그 ‘우리’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요?

가족들이 속해있는 집단만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직장에서는 어디까지가 우리일까요?

우리의 범주를 계속해서 넓혀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 함께 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보다 먼저 죽은 사람들과

모두 함께 다시 태어나고 싶다.

대신 이번에는 내가 먼저 죽고 싶다.

내가 먼저 죽어서 그들 때문에

슬퍼했던 마음들을 되갚아주고 싶다.

(어느 시인의 말)


요한 보스코 사제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

100명의 인디언들이

버펄로를 구석에 몰아서

창을 던집니다.

이 버펄로는 3~4개의

 창을 맞고 죽고 말지요.

인디언들은 버펄로를

똑같이 100명이서 함께

나눠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가장 용맹하고

사냥을 잘하는

인디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맞췄는데 왜

나눠 먹어야 하느냐?

이제부터는 창에

이름을 써서 맞춘 사람이

버펄로를 차지하자.”
인디언들은 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창을 맞춰서 버펄로를

죽인 사람이 차지할 수

있도록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창을 맞춘 사람만 버펄로를

차지해서 먹다보니 굶는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먹지 못하니 힘이 없어서

사냥을 나가서 버펄로를

구석으로 몰수도 없었습니다.

또한 버펄로를 맞춘 사람만이

버펄로를 차지하니

그 누구도 구석으로 모는

 역할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창을 던지기만 하니

허탕을 칠 수밖에 없었지요.
우리의 삶 안에서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모두가 나를 위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사랑을 베푸는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

 

 

버펄로 사냥을 하는 인디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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