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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31.강론.“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31 조회수1,699 추천수0 반대(0) 신고

 

 

마르 6,1-6(연중 4 )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는 존경받지 못한다.”(마르 6,4)

 

 혹 우리도 더러는 사회적으로는 존경받으면서도 가까이 있는 이들, 곁에 있는 이들, 곧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으로부터는 존경받지 못하지는 않나요?

 오늘 우리는 그 반대편에서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왜 내 곁에 있는 이들, 곧 내 부모 형제들, 내 동료들을 존경하지 못할까?

 

 너무도 잘 알아서 그럴까요? 그런데, 나는 그를 진정 잘 아는 걸까요? 혹 인정하고 싶지가 않아서는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도 그 이유가 예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고향 사람들에게 있음이 드러납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도 우리 곁에 있는 내 동료, 내 형제를 존경하지 못한 이유를 내 형제에게서 찾기에 앞서, 먼저 나 자신에게서 찾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지혜와 기적을 보놀라워하였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놀라워하였다는 이야기는 보고 알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곧 그들은 그분의 신적 권위와 지혜와 능력에 대해서는 알아보고 놀라워하였지만 또 다른 사실을 알았기에, 곧 그분이 목수이기에, 마리아의 아들이기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기에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안다는 것이 오히려 믿음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오히려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마르 6,3). 왜일까요?

왜 우리는 가까운 이나 함께 살고 있는 이를 존경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못마땅하게 여기기가지 할까요?

 

 

그것은 내가 그를 안다는 자기 생각에 빠진 결과가 아닐까요? 있는 그대로의 그가 아니라 내가 아는 그라는 선입감을 믿어버린 것이 아닐까요? 사실, 그것은 그에 대한 하나의 편견이요, 고정관념이요 고착일 뿐일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자신이 아는 것 그것을 섬기고 따르고 마는 하나의 우상숭배일 뿐일 것입니다. 진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안다는 생각에 가려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한 무지요, 곡해와 왜곡과 몰이해일 것입니다. 거기에는 질투와 시기, 비교와 경쟁, 이해타산의 이해관계가 있고, 신뢰가 아닌 의혹이 있고 따짐이 있고 계산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안다는 것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오히려 나는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일입니다.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지를 우리는 흔히 무지의 지라고 일컫습니다. 이른바 현명한 무지(doxda ignoraza) 입니다.

 

 사실, 자신이 안다는 생각, 그 생각은 곧 우상에 지나지 않을 뿐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우상을 벗어나야, 진정한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자신의 앎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앎으로부터 해방시켜드리는 것입니다. 아니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제거해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우상의 하느님을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신 하느님, 주님이신 주님, 비록 자신이 아는 그러한 주님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분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타인에게 자신을 개방하는 일, 개방을 넘어서 타인을 수용하는 일, 수용을 넘어서 타인으로 하여 자신의 변형을 이루는 일, 그것은 바로 자신의 앎을 비워내고 자신의 앎을 넘어서는 그분을 믿고 받아들임에 달려 있는 일일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습니다.”(마르 6,6) 당혹스럽고 안타까움으로 놀라워하셨습니다. 마치, 수술을 받아야 살 수 있는데도 의사를 믿지 않고 수술을 거부하는 환자 앞에 선 것처럼, 당혹해하시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의사는 치유의 능력이 있건만 환자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야말로, 진정 하느님을 끌어당기는 자석입니다. 오늘 우리의 불신 때문에 예수님께서 당혹해하시지 않으시도록 믿음으로 그분 앞에 나서야할 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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