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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2.0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02 조회수2,14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제1독서 말라 3,1-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

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복음 루카 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

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지난주에는 무척 바빴습니다.

이곳저곳에 보내는 원고를 써야만 했고,

또한 방송녹음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바쁘다보니 좋아하는 책도

읽을 수가 없었고,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것도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었지요.

또한 운동도 전혀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문득 이러한 상상을 해봅니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36시간이면 좋겠다.’
그런데 반대로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할 때도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주로 어떤 기다림이

있을 때가 그러한 순간입니다.

어렸을 때 소풍 전날 빨리

하룻밤이 지나서 다음날

아침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 않았습니까?

오랫동안 기다렸던 결과를

 빨리 보았으면 하는

마음은 어떻습니까?

아마 이때는 이러한 상상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12시간이면 좋겠다.’
천천히 갔으면 하는 시간도 있고,

또 빨리 갔으면 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기대 시간들을 평균내보면 결국

하루 24시간이 가장 적당하고

아름다운 분량이 아닐까요?

이보다 길면 지루하고, 짧으면

무척 바쁘고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적당한 시간 24시간을

주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이 시간만을 봐도 주님께 얼마나

 감사의 마음을 간직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더욱 더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주님을 향한 최고의 봉헌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시메온과

한나 예언자는 오랫동안

성전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기도와 단식을 하면서 성전을

 떠나지 않으면서 주님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던

이유는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세상의 부귀영화보다는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더 큰

행복의 길임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님을 직접 보고 주님을

자신의 품에 앉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주님께 내 자신을

봉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봉헌이란 나중에 무엇인가를

받기 바라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봉헌했으니,

당신께서도 제게 무엇인가를

주셔야지요.’라는 마음이라면

참된 봉헌이 될 수 없습니다.

봉헌이란 주님께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사랑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주님의 사랑에 맞춰서 우리 역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이야 말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최고의 봉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께

어떤 봉헌을 하고 있을까요?

사랑에 의해 행해지는 것은

언제나 선악을 초월한다.

(프레드리히 니체)


조반니 벨리니의 주님 봉헌.

"쉽게 판단하지 마세요."

나무는 어디가 정면일까요?

특별히 어디가 정면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볼 때마다 또 보는 위치에 따라

정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을 한 번 생각해보지요.

 꼭 눈, 코, 입이 있는 부분이

정면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의

뒤통수가 원래 하느님께서

만드신 정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고정화시키지요.

모든 곳이 다 정면이

 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사람의 한 가지 모습이 그 사람

전체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성격도 얼마나 다양합니까?

운전할 때 너무 바빠서 딱 한 번

속도를 내서 추월을 했습니다.

이를 두고서 아주 난폭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평상시에는 3~4시면 일어나지만,

어제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 5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일어났습니다.

이를 두고서

“빠다킹 신부는 게으른 사람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너무 쉽게 생각하고 간단히

단정 짓는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한 가지 모습이 그 사람이

 전부가 아닌 것처럼,

한 가지의 모습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저의 모습 중의 또 다른 모습은

 이렇게 개와 노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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