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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2.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04 조회수2,920 추천수7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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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4일

연중 제5주일

제1독서 욥 7,1-4.6-7

욥이 말하였다.
1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2 그늘을 애타게 바라는 종,

삯을 고대하는 품팔이꾼과

같지 않은가?

3 그렇게 나도 허망한

달들을 물려받고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

4 누우면 ‘언제나 일어나려나?’

생각하지만 저녁은 깊어 가고

새벽까지 뒤척거리기만 한다네.

6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구려.

7 기억해 주십시오,

제 목숨이 한낱 입김일 뿐임을.

제 눈은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제2독서 1코린

9,16-19.22-23

형제 여러분,

16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17 내가 내 자유의사로

이 일을 한다면 나는 삯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한다면

나에게 직무가 맡겨진 것입니다.

18 그렇다면 내가

받는 삯은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것에 따른 나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하는 것입니다.

19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2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복음 마르 1,29-39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29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어느 순간 ‘몇 년 뒤’라는

자막이 보이면서

새로운 화면이 나오곤 합니다.

그 몇 년 동안을 잘 지냈는지

성공한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았는지

남들에게 위로를 받는 불쌍한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 몇 년이 사람의 모습을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무도

이러한 구성에 대해 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럴 수 있다’라고

 인정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지금의 내 모습을

한 번 천천히 바라보십시오.

지금 모습은

몇 년 뒤에 어떻게 될까요?

남들의 부러움을

받을 만큼 잘 될까요?

아니면 엉망진창이 되어서

사람들의 안타까워하는

선을 받게 될까요?

그 몇 년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분명하게

결정될 것입니다.

문제는 내게 그 몇 년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내 삶은 틀려먹었어.

지금의 상황은 바뀌지 않아.’
남의 몇 년이 변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나의 몇 년 역시

 변화 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멋지게 변화시킬

몇 년이 있음을 그리고

그 몇 년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사랑이신

주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그 몇 년을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따라서 무엇이 무서울까요?

또 무엇이 걸림돌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습니다.

이 시몬의 장모 모습처럼 많은

이들도 세상의 각종 문제들로

힘들어합니다.

제1독서의 욥이 말하는 것처럼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을 지도 모릅니다(욥 7,1 참조)

그래서 나의 나날이 희망 없이

사라져가고,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 같기도 합니다.

(욥 7,6.7 참조)

하지만 예수님께서

 시몬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시게 됩니다.

즉, 병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힘만으로는 지금

이 순간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바로 주님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실 기도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

주님께서도 기도하셨습니다.

밤새 병자를 고쳐주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시느라 피곤하셨을 텐데도

새벽에 일어나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셨습니다.

(마르 1,35 참조).
기도는 특별할 때에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평범한 일상 안에서도

계속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우리에게 선물로 줍니다.

종종 18년째 새벽 묵상 글을

써오고 있는 저를 향해 사람들은

“대단하다”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그러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밥을 먹고 있지 않습니까?”

라고 질문을 던져봅니다.

모두가 “당연하지요.

 안 먹으면 살 수 없으니까요.”

라고 대답하십니다.

이에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하고 묵상 글을 쓰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밥 먹는 것이 특별하지 않는 것처럼,

묵상 글 쓰는 것도 특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평범한 일상입니다.

그러나 이 평범함도 꾸준히

하니까 특별함이 나오나 봐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범한 일상 안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기도를 통해 우리는

특별함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를 통해 주님의

손을 잡으신 분은 결코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시몬의 장모가 주님 곁에

시중을 들었던 것처럼

주님의 뜻에 맞게 행동하기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꾸준한 기도를 통해 주님의

손을 잡을 수가 있었고,

그는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지금 내 자신은 주님의 손을 잡고

있는지를 떠올려 보셨으면 합니다.

그 방법은 오로지 평범한

 일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꾸준한 기도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명언:

위대한 인물에게는

목표가 있고,

평범한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을 뿐이다.

(워싱턴 어빙)


재미있는 강아지 케익입니다.

"내가 만드는 미래"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께서는

 1970년 ‘여성동아’의

장편소설 공모전을 통해서

데뷔하셨습니다.

이 데뷔작이 유명한

‘나목’이라는 작품이지요.

이 소설은 한국전쟁 중

미군 부대 PX 초상화 가게에서

 일하던 화가에 대한 내용으로,

선생님의 체험이

담겨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나목’을 뽑은

심사위원들은 선생님을

칭찬하면서도 작가의 특수한

자기 경험을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일회적인

작가가 될 것이라고

한 소리로 예언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선생님께서

 데뷔하실 때의 나이는

이미 마흔으로 결코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어떠했을까요?

2011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선생님께서는 계속해서 글을

쓰셨고 또 많은

 책을 출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때 심사위원들의

예언은 어떠한가요?

모두 틀린 말이 되고 말았지요.
종종 미래를 예상하는

 ‘저 사람은 ~ 할거야.’, ‘너는 ~

사람이 될 거야.’ 등등의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느님이 아닌 다음에야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이런 말에 쉽게 흔들리고

또 단정 지으면서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러한 말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저렇게도 생각하는구나.’

라고 받아들이면서,

그 생각이 틀렸음을 보이기 위해

더욱 더 힘차게

살아보면 어떨까요?

남의 말에 의해 내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내는

미래가 되지 않을까요?

박완서 선생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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