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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4.강론.“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04 조회수2,056 추천수0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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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 1,29-39(연중 5 주일)

 

 연중 5 주일입니다. 추위가 누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모두들 건강에 유의하시길 빕니다.

 

 <1 독서>에서, 욥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희망을 둡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오늘 <복음>에서 이루어집니다.

 <2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복음의 전달자로서,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고(1고린 9,19), 모든 사람의 모든 것이 되었음(1고린 9,22)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음 선포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로 제시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공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줍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기도생활과 활동생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활동생활은 다시 말씀의 선포활동과 치유구마활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셋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를 우리는 예수님의 3중 직무 곧 예언직과 사제직과 봉사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 세 가지 내용을 다 담고 있습니다.

 <첫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치유와 구마로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당신께서 빛이심을 드러내시는 장면이요, <둘째 장면>은 아버지 성부와 친교와 유대를 이루시며, 새벽에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신 장면이요, <셋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외딴 곳에서 기도하시고 나서, 이웃 고을로 가시어 복음을 선포하시는 장면입니다.

 

 <첫째 장면>은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치유하시고 몰려든 많은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고쳐주시는 장면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치유와 구마로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섬기는 장면입니다. 곧 섬김의 봉사직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한 구절에만 주의를 기울여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마르 1,31)

 

 이는 손을 잡자 열이 내려가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치유를 받아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일으켜지자 치유가 일어났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우리는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악습이나 결함이 고쳐지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잡아주시니 우리가 고쳐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치유 받으면 믿을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믿음이 치유를 불러옵니다. 그것은 그분의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치유가 아니라, 믿음인 것입니다.

 사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그 사랑을 믿고, 그 구원의 손길에 감사드려야겠습니다.

 

 <둘째 장면>새벽 아직 캄캄할 때,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신 장면입니다. 이를 우리는 전례와 성사로 대표되는 성화를 위한 예수님의 사제직과 관련해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곧 아버지 하느님과의 일치에 당신 삶의 중심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토록, 당신의 삶은 아버지 성부와의 친교와 유대 안에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지상 삶의 두 가지 차원, 기도와 활동의 삶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결코 기도 없는 활동이나 활동 없는 기도가 있을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곧 기도는 활동이 되어야하고 활동은 기도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활동에 앞서 먼저 기도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곧 활동으로 나아갔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외딴 곳에서 기도하시고 나서, “복음 선포를 위해 다른 이웃 고을들로 찾아가시는 장면입니다. 곧 선포와 증거의 예언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마르 1,38)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느님 곁을 떠나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곧 당신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주신 사명이기도 합니다(마르 16,15). 바로 이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고쳐주시고, 먼저 외딴 것에서 기도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이는 당신 권능의 표시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사랑과 구원의 표시였음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이 은총, 이 사랑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이 사명을 우리의 사명으로 받아 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의 이 사명을 바로 우리의 소명으로 받은 이들임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먼저 하느님과의 유대와 친교를 앞세우는 기도의 삶이요, ‘선포된 복음을 영접하고 그를 선포하고 증거하는 삶이요, ‘형제와 이웃에게 봉사하며 섬기는 삶인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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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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