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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마음의 눈으로 그분을 바라만보면 /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05 조회수1,536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과 일행은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그들이 내리자 사람들은 곧 알아보고,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마을 곳곳 장터에다가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손을 댄 이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53-56 참조)’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 사람들은 동네방네 소문을 낸다. 어떤 병도 고쳐 주시는 그분께서 오셨단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병든 이를 들것에 눕혀 데려온다. 주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일어나는 일이다. 이렇듯 예수님과의 만남은 치유를 통한 접촉이었다. 기적의 힘은 분명 예수님에게서 나온다. 그분을 뵙고 싶은 갈망,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 그리고 함께 하는 믿음이 구원으로 이끌게다.

 

손뼉도 부딪쳐야 소리가 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지만, 우리 스스로가 간절함과 무덤덤함,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그 열매를 맺을 수도,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예수님을 잘 알아보고 있을까? 예수님께 어떤 반응을 얻고자 여기저기 분주히 나다닐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손을 잡고서 그들을 예수님께 데려가기나 할까? 아니면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서 예수님께 간절히 청하고 있을까? 이러한 일 가운데 과연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실천하고 있을까?

 

그래도 병고에 시달리는 겐네사렛에 사는 이들은 예수님을 찾아 간청했다. 멀리서 소리치는 이, 몰래 옷자락이라도 만지려는 이, 가까운 사람들을 동원해 부탁하는 이, 그 방법은 각자 삶에 따랐다. 그들은 저마다 다 구원을 받았다. 치유의 길은 자신이 병자라는 걸, 아는 게 먼저이고, 어떤 방법으로도 예수님을 만나는 게 다음이며, 마지막은 보이고 자비를 간청하는 거다. 문제는 우리는 가끔 우리가 병든 것조차 모른다는 데 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아보고 치유 받으려 그분께 달려간 이들은, 그분 말씀에서 하느님의 치유를 받은 이들일 게다. 자신이 병든 자임을 깨닫는 이만이 치유를 청하기에. 혹시 내가 하는 말들이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분열시키며, 때로는 혼란을 가져온다면, 나는 치유를 청할 줄도 모르는 영혼이 병든 이 인닌지를 꼭 되돌아볼 때이다.

 

하느님 능력은 무한하다. 누구라도 청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면 그분의 힘을 체험한다. 성체 앞에서 삶의 아픔을 말씀드리면 위로받으리라. 대부분은 그분 힘을 이론적으로만생각하고 기적을 어마어마한 것으로만 여기기에 못 느끼고있을 뿐이다. 기적은 따뜻함이고 차가운 마음을 녹이는 훈훈함이다. 예수님은 병든 이를 선뜻 낫게 하신 것이 아니다. 먼저 마음을 열게 하신다. 그런 뒤에 하느님의 능력을 주신다. 마음을 열었기에 그들은 뜨거움을 느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게다.


미사 때마다 영성체를 받아 모시면서 예수님 모심을 깊이 체험해야 할 게다. 그때마다 기적의 그분을 만나는 두려움이 앞서야 한다. 그러기에 습관적인 영성체가 아닌지를 스스로 되돌아보자. 언제나 애절한 마음으로 예수님 몸을 모셔야 영혼의 힘이 생기로 다가옴을 느끼리라. 지금 이 순간에도 애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꼭 바라본다면, 그분의 그 따뜻한 기적은 얼마든지 체험할 수가 있을 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겐네사렛,믿음,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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