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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2.0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05 조회수1,457 추천수6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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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5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1열왕 8,1-7.9-13

그 무렵

1 솔로몬은 주님의 계약 궤를 시온,

곧 다윗 성에서 모시고 올라오려고,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각 가문 대표인 지파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예루살렘으로

자기 앞에 소집하였다.
2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에타님 달,

곧 일곱째 달의 축제 때에

솔로몬 임금 앞으로 모였다.

3 이스라엘의 모든 원로가

도착하자 사제들이 궤를 메었다.

 4 그들은 주님의 궤뿐 아니라

만남의 천막과 그 천막 안에 있는

거룩한 기물들도 모두 가지고

올라갔는데, 사제와 레위인들이

그것들을 가지고 올라갔다.

5 솔로몬 임금과 그 앞에 모여든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함께

궤 앞에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양과

황소를 잡아 바쳤다.

6 그러고 나서 사제들이

주님의 계약 궤를 제자리에,

곧 집의 안쪽 성소인

지성소 안 커룹들의

날개 아래에 들여다 놓았다.

7 커룹들은 궤가 있는 자리 위에

날개를 펼쳐 궤와 채를 덮었다.

9 궤 안에는 두 개의 돌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돌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올 때,

주님께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호렙에서 모세가 넣어 둔 것이다.

10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11 사제들은 그 구름 때문에

서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에 가득 찼던 것이다.

12 그때 솔로몬이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짙은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3 그런데 제가 당신을 위하여

웅장한 집을 지었습니다.

당신께서 영원히

머무르실 곳입니다.”
복음 마르 6,53-5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53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겁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서

‘겁쟁이, 겁보’라고 놀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른이 겁이 많을까요?

아이가 겁이 많을까요?

당연히 어른보다는 아이가

겁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른이

더 겁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갓난아기는 2,000번 넘게

넘어져야 비로소 두 발로

서서 일어나

걸을 수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 막 태어난 아기는

절대로 걷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걷는 것을

포기하는 아기는 없지요.

계속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걸으려고 합니다.

넘어지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른은 어떻습니까?

많은 어른들이 두려워하면서

좌절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포기와 타협에

익숙하게 됩니다.

어른이 더 겁쟁이,

겁보가 아닐까요?
문득 수영을 처음

배울 때가 생각납니다.

 저는 성인이 되어서

 수영을 배우려고 수영장

강습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수영장 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물 위에 잘 뜨지 못하고

계속해서 물속으로 가라앉는

저를 향해 강사는 농담 삼아

이런 말을 종종 했지요.
“어깨에 철심이 박혀

있는 것 아닌가요?

뜨지 못하고 물속으로만

들어가는 것을 보니까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고,

또 수영이 점점 더 싫어졌습니다.

그런데 항상 제 동창신부가

함께 해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수영장

갈 수 없는 핑계를 만들까 할 때,

동창신부는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저를 끌고서

수영장에 함께 갔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더 이상 물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겁쟁이고 겁보라 할지라도

 누군가가 함께 한다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여기에 주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습니까?

따라서 두려워하기보다는

함께 하는 데에

집중한다면 어떨까요?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들은

병든 이들을 들것에라도

눕혀서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이라도 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합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가 구원을 받았다고

복음은 전해줍니다.

병의 치유를 받았다는 것이지요.
병든 이들의 심정을

떠올려보았으면 합니다.

 당시에 병든 이는 하느님의

벌을 받고 있는 죄인이라고

생각했었지요.

따라서 사람들 앞에 자신 있게

 나아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도

힘들어 했습니다.

죄인이라는 사실에

두려웠던 것이지요.

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은

바로 병든 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 사람들,

예수님께 당신의 옷자락 술에

손이라도 댈 수 있도록

청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또 다른 겁쟁이와

겁보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그냥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만 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우리가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주님께

기도하면서 부탁해야 합니다.

그때 주님 구원의 손길이

환하게 나타납니다.

지금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니체)

아기는 걷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쓰레기는 간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학창시절에 받은

상처에 대한 기억 때문에 힘들다고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이를 들은 스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세요.
“길을 가는데 갑자기

누가 무엇을 주고 갔어요.

 선물인 줄 알고 열었는데

안을 보니 쓰레기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을 받은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죠.”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대답에 스님께서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쁜 말은 말의 쓰레기입니다.

쓰레기인 줄 알았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버리면 됩니다.

움켜잡고 있으니 힘든 겁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도

 이러한 쓰레기입니다.

쓰레기는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세상인데,

겨우 이러한 쓰레기나

움켜잡고 있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지금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십시오.

 대신 간직해서는 안 되는

쓰레기통은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버리십시오.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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