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5주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08 조회수2,380 추천수12 반대(0)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란 말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덧 저 자신의 위치가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이번 교구 인사이동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병원, 방송, 출판사를 담당하는 신부님들이 예전에는 모두 선배 사제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와 가까운 신부님, 후배 신부님들로 바뀌었습니다. 사제가 된 지 27년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나이를 먹은 만큼 더 겸손해지고, 더 믿음이 깊어지고, 더 나누고 있는지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습니다. 여러 곳을 여행했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지만 주님의 말씀을 더 깊이 받아들이지 못했고,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아이의 친모가 누구인지 가릴 수 있을 만큼 지혜로웠습니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만들어서 나라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의 업적과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지혜와 능력은 커져갔지만 그만큼 교만도 커져갔습니다. 하느님께 감사하기보다는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고 싶어 했습니다. 겸손하지 못한 지혜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능력은 바람 앞의 촛불 같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솔로몬에게 처방을 내리십니다. 의사는 환자의 병이 위중하면 수술을 해서라도 고치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이 좀 더 겸손해질 수 있도록, 좀 더 믿음이 강해질 수 있도록 처방을 내려 주셨습니다. 솔로몬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처방을 잘 받아들이고, 따른다면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눈물로 씨 뿌리는 사람이 기쁨으로 곡식을 얻으리다.” 27년 전 사제서품을 받을 때 정했던 서품성구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나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셨고, 나를 위해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눈물로 씨를 뿌리기 전에 먼저 얻으려고 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드러내기보다는 저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바란 적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감동적인 신문 기사를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 여인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6년 동안이나 간병해서 의식을 되살려낸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의사들도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한 남편을 기적적으로 소생시켰습니다. 그녀는 항상 "그는 환자가 아니다. 내 남편이다."라고 스스로 다짐하였으며 하루에도 수십 차례 의식 없는 남편과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남편을 아기처럼 껴안고 뽀뽀도 하였으며 남편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도저히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이 그 남편은 6년 만에 부활하여 첫마디를 "아멘"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성정식(成貞植)이란 여인의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리들의 남편을, 아내들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우리도 분명히 결혼식에서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병들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항상 사랑할 것을 맹세'한 신랑 신부였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이 아니었던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솔로몬처럼 지혜가 크지도 않았습니다. 저처럼 사제생활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듣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였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겸손함을 보시고, 그 믿음을 보시고 여인의 딸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능력, 지혜, 업적, 지위를 모두 모아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겸손과 모든 것을 내 맡기는 믿음의 무게를 감당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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