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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2.0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08 조회수1,768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8년 2월 8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

제1독서 1열왕 11,4-13

솔로몬 임금이

4 늙자 그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다른

신들에게 돌려놓았다.

그의 마음은 아버지

다윗의 마음만큼

주 그의 하느님께

한결같지는 못하였다.

5 솔로몬은 시돈인들의 신

아스타롯과 암몬인들의

혐오스러운 우상 밀콤을 따랐다.

6 이처럼 솔로몬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고, 자기 아버지

다윗만큼 주님을 온전히

추종하지는 않았다.

7 그때에 솔로몬은 예루살렘

동쪽 산 위에 모압의 혐오스러운

우상 크모스를 위하여 산당을 짓고,

암몬인들의 혐오스러운 우상

몰록을 위해서도 산당을 지었다.

8 이렇게 하여 솔로몬은 자신의

모든 외국인 아내를 위하여

그들의 신들에게 향을 피우고

제물을 바쳤다.
9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진노하셨다.

그의 마음이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에게서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그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시어,

10 이런 일, 곧 다른 신들을

따르는 일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는데도, 임금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11 그리하여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뜻을 품고,

내 계약과 내가 너에게 명령한

규정들을 지키지 않았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너에게서

떼어 내어 너의 신하에게 주겠다.

12 다만 네 아버지 다윗을 보아서

네 생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고,

네 아들의 손에서

 이 나라를 떼어 내겠다.

13 그러나 이 나라 전체를

떼어 내지는 않고,

나의 종 다윗과 내가 뽑은

예루살렘을 생각하여

한 지파만은

네 아들에게 주겠다.”

복음 마르 7,24-30

그때에

24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25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
26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러자 그 여자가,

“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29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30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흑인인권

운동가인 ‘넬슨 만델라

(Nelson Mandela)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종신형을 받고

27년여 간을 복역하면서

세계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복역을 하면서도

절망이나 포기를 몰랐던

것으로 유명하지요.

실제로 그는 이러한 말을

자주 했습니다.
“나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이기거나 배운다.”
실패에 대해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끄럽고 그래서 돌이킬 수

없다면서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넬슨 만델라처럼

실패라는 이름의 지는 것은

없다고 여긴다면 어떨까요?

지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길을 배우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서는

정신치료 전문가들도 말합니다.

스스로 실패자라고 여기는

 사람은 호전되지 않지만,

 ‘인생은 그런 거야.’라면서

실패가 아닌 또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이면서 희망을 찾는

사람은 분명히 병에서

호전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이교도인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의 여인이

자기 딸의 마귀를 쫓아내달라는

끈질긴 간청을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매몰차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격적인

 모욕까지 하면서 청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주님이라는

분께서 왜 그러실까요?
우선 예수님께서는 티로

지역에 계시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이 티로 지역은 옛 페니키아의

주요 항구 도시로,

북 이스라엘 왕인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이세벨은 바알 신앙을 도입하여

엘리야로부터 미움과 비난을

받은 사람이었지요.

그러다보니 이 지역은

 ‘믿음의 변두리 지역’으로

통했습니다. 즉, 세례를

받았다고 해도 죄를 지어

다시 되돌아가는

곳이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여기에 이교도인이 찾아와서

부탁을 하니 더욱 더

외면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아마 이 여인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말을

듣고서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께 청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께

매달렸다는 것입니다.

주님께만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말에도 또 인간적으로

큰 모독을 받아도

상관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딸에 대한

사랑이 컸기 때문에 어떤

난관에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 안에서 실패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 실패가

또 하나의 길을 배우는 것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

(로마 정치가 카토)

넬슨 만델라의 "나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이기거나 배운다."를 기억하세요.

"훌륭한 나의 영역 만들기"

단거리 선수와

마라톤 선수가 있습니다.

누가 더 훌륭할까요?

엄청난 속도를 내는

단거리 선수일까요?

아니면 대단한 지구력을

보이는 마라톤 선수일까요?

정답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단거리 선수는 단거리라는

측면에서 훌륭하고,

마라톤 선수는 42.195Km의

거리 안에서 훌륭할 뿐입니다.
우리 인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내가 아닌 누가 훌륭하고

대단하다면서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영역 안에서

훌륭할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의 영역을 만들고

그 안에서 훌륭할 수 있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요?
문제는 나의 영역이 없다고

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없을까요? 아닙니다.

그 영역을 만들고

 있지 않았을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랑, 우정, 희망.... 이러한 것들도

나의 영역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훌륭하지

않으면 또 어떻습니까?
조금 느려도 괜찮습니다.

끝까지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갑곶성지 영성센터에서 연수를 마친

서울신학교 교수신부와 신학생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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