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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믿음은 하느님 사랑을 느낄 때에 / 연중 제6주일 (나해)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11 조회수1,389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는 무릎 꿇고 말하였다. “스승님은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 1,40-41 참조).’ 나병은 살이 문드러지고 떨어져 나가는 무서운 병이다. 이보다 더 비참한 병은 역사상 없었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도 멍들었기에. 본인은 그러고 싶지 않지만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정상적인 생활을 버려야 했고 가족으로부터도 격리되어야 했다. 이보다 더한 형벌이 어디에 있을지? 바로 그런 병에 걸린 이의 청을 예수님께서는 들어주신다. 병이 나은 거다. 흔적이 없어진 거다. 그의 기쁨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강했으리라. 절망에서 희망을, 포기에서 재생을 만났을 게다.

 

자비’(compassion)고통을 함께한다.’라는 뜻이다. 남의 고민을 덜어 주고 싶은 마음, 남의 고통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다. 따라서 자비는 남의 아픔에 함께하는 것, 그 아픔에 대하여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거다. 그래서 자비로운 이는 남이 슬퍼하면 함께 슬퍼하고, 외로운 이와는 함께 외로움을 나눈다. 이런 마음이 분명히 우리에게도 있다. 내 안에 있는 이 마음이 불행에 빠진 이웃에게 전해진다면, 그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그만큼 줄어들게다. 그만큼 웃음이 곳곳에 피어나는 사회가 되리라.

 

맹자는 불행한 일을 당한 이에게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나. 그러고는 이를 우물에 빠진 어린아이를 근거로 하여 설명한다. 우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아이를 본다면 누구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를 구하려 할 게다. 이는 그 아이의 부모와 사귀려거나, 다른 이들께 칭찬 받으려거나, 비난을 들을까 두려워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란다. 맹자는 그 이유가 사람들은 누구나 어려움에 놓인 것을 보았을 때 못 본 척하지 못하는 마음을 지녔단다. 곧 불쌍히 여기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에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져 위험할 때 달려가 그 아이를 구하려고 행동한다는 거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간청한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손 내밀며 말씀하신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 환자의 고백은 처절하다. 마음만 써 주신다면 치유해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예수님을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의 자비를 이끌어 냈다. 죽음에 이르도록 결코 치유될 수 없는 병임을 아는 이가 오직 믿음으로 완치되었다.

 

그 나병 환자는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도 아니다. 주님께서 개입하셨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그분께서 봐주시면 운명도 바뀌고 인생도 달라진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신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이러한 사랑을 깨달을수록 더욱더 그분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리라. 우리는 언제쯤 하느님 사랑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을까? 잠시 마음으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시간을 가져보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나병,자비,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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