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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2.1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12 조회수2,268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2월 12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제1독서 야고 1,1-11

1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세상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인사합니다.
2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3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4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5 여러분 가운데에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6 그러나 결코 의심하는 일 없이

믿음을 가지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7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8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 어떠한 길을 걷든

안정을 찾지 못합니다.
9 비천한 형제는 자기가

고귀해졌음을 자랑하고,

10 부자는 자기가

비천해졌음을 자랑하십시오.

 부자는 풀꽃처럼

스러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11 해가 떠서 뜨겁게 내리쬐면,

풀은 마르고 꽃은 져서

그 아름다운 모습이 없어져 버립니다.

이와 같이 부자도 자기 일에만

골몰하다가 시들어 버릴 것입니다.

복음 마르 8,11-13

그때에

11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13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엄청난 관광지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지가 된 것은

한 사람 덕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의 작품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관광수입을 올릴 수가 있었고,

이로 인해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주정부는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까지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평생 곡선 건물만을

건축한 안토니오 가우디입니다.

성가정 성당, 구엘공원, 구엘저택

등의 건축물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가우디의 천재성에 모두 감탄을 하지요.

이러한 건축물은 신이 만든 기적과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천재성을 일찍부터

 사람들이 알아차렸을까요?
그는 건축학교에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였습니다.

건축학교 때에도 성적이 너무 나빠서,

회의를 거듭한 끝에 졸업시켜

 주기로 결정할 정도였지요.

 졸업식장에서 교장은 가우디를 향해서

“우리가 천재에게 졸업장을 주는지,

바보에게 주는지 모르겠다.”

는 말까지 덧붙였다고 합니다.
이런 그를 알아본 한 인물이

바로 구엘 백작이었습니다.

가우디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이 바르셀로나를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말하는

모든 건축물은 가우디를 알아본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

가능해졌습니다.

알아봄으로 인해

기적이 나온 것입니다.
누군가를 알아본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할 때 가능합니다

즉, 그 사람의 편에서 생각하고

 바라볼 때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은 어떨까요?

자기 생각의 틀에 빠져서

상대방을 인정하기보다는

부정하고 또 이로 인해

거부할 때가 더 많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우리 곁에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표징을 요구하는

바리사이들을 향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많은

기적을 베풀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런데도 불구하고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합니다.

왜 그럴까요?

병자의 치유만으로는

믿기 힘들었을까요?

빵의 기적으로도 부족했을까요?

바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기적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많은 표징을 주님께 요구합니다.

그러나 표징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삶 안에서 함께 하시는

주님을 알아봐야 합니다.

나의 이웃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을,

사랑의 삶 안에 계시는 주님을

알아볼 때 주님께서 주시는

표징이 하나둘씩 보일 것입니다.

신이여,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의지를,

그리고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외부입니다.

"명태, 노가리"

명태는 대구와 함께 대표적인

한류성 어종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겨울에 잡히는

명태는 러시아의 오호츠크해와

베링해에서 형성된 한류대를 따라

동해로 내려온 것들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동해안의

해수 온도가 점점 올라가면서

이제 명태가 잡히지 않습니다.

 이를 두고 지구 온난화에 따른

환경 변화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동해에는

개펄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정화작용을 하는 개펄이 동해에는

없어서 농업용수와 축산용수가

그대로 바다로 흘러감에 따라

해수 온도가 올라가는 것이랍니다.

명태는 민물의 은어나 쏘가리처럼

일급수를 따라다니며 회유하는

 어종이어서 점점 더러워지는

동해바다를 피해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어자원의 고갈이라고 합니다.

작은 명태까지 모두 잡아버려서

이제 씨가 마른 것입니다.

 아마 ‘노가리’를 많이

드셔보셨을 것입니다.

이 노가리가 바로

명태 새끼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보기 힘들지 않습니까?

요즘도 있다고 하시는 분들은

우리나라 노가리가 아니라,

수입산 노가리를 드시는 것입니다.
개발만 최고로 생각하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을 줄여나가면서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길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모두

 잘 살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 안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주변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아간다면 어떨까요?

그만한 배려를 할 수 있을 것이고

 함께 살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이기심과 욕심이 자연의

질서를 깨뜨리고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가우디의 구엘공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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