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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새롭게 또 한 해를 시작하면서 / 설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16 조회수1,551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외가동네로 머슴살이 간 큰아들은 새경을 짊어지고 와 지게를 받쳐 놓고 더 말라 버린 아버지 손을 잡는다. 공장으로 돈 벌러 간 누이도 벌써 도착했고, 객지에 나간 작은아들은 빈손이라 못 온다더니 섣달그믐 한밤중에 사립문을 들어섰다. 희미한 등잔불 아래 초라한 가방에서 버선과 고무신을 꺼내어 어머니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흐느낀다. 모두 모였다. ‘고생들 많았다. 몸성히 왔으니 바랄 게 뭐 더 있겠어.’

 

설날 아침 차례 지내러 가자. 문중 어른께 세배하고 친척과 함께 여기저기 조상들의 산소를 순례한다. 하얀 두루마기 차림에 기러기 떼처럼 외줄로 밭길을 간다. 까만 교복의 까까머리, 꽃 댕기 매고 색동 치마저고리 차려입고 재잘거리는 아이들까지 명절이 참 좋구나! 창 너머 마른 나뭇가지를 오가며 지저귀는 까치가 평화롭다.

 

우리나라 고유 명절인 설날 옛 풍습이다. 올 설에도 하느님 축복 많이 받으시길 빈다. 요즘 많은 이가 힘들게 산단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든 나날을 보내시는 분들도 내일은 좀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 속에 살게다. 이렇듯 희망은 가진 이나 못 가진 이, 배운 이나 못 배운 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부여된 특권이다. 희망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며 내일에 대한 꿈이다. 희망은 한없는 하느님의 생명력이리라.


의 어원은 이나 선다.’라고 한다. ‘은 한 살 더 먹는 날이라는 뜻이고, ‘선다.’는 장이 서는 것처럼 일 년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라나.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는 뜻에서 나왔다고도 주장한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듯 한 해를 시작할 때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여겼다. 인간의 삶이 결코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언제나 전능하신 분의 도우심과 조상님들의 은덕이 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한 것임을 깨달았기에.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에서 시중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이나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 종들은 행복하다!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알면, 집을 뚫고 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37-40 참조)’

 

설 아침에 깨어 있으라.’라는 의미를 되새기자. 그러려면 로 시작하는 말들을 곰곰이 보자. 깨끗하다, 깨뜨리다, 깨닫다, 깨우치다, 등등. 이 말들의 공통점은 다 라는 말이 무언가 부수거나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면 신앙의 의미에서 깨어 있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과거의 묵은 자기 자신의 것을 지금 막 깨뜨릴 수 있는 것도. 고정 관념을 깨부수는 것,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온갖 허물을 깨끗이 치우는 것일 수도. 그렇게 지난 한 해의 낡은 삶에서 깨어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렇다. 참된 것을 맞이하려면 언제나 깨끗함을 유지하여 자신을 깨뜨려야 할 게다. 그러할 때에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과 친교를 맺을 수가 있으리라.

 

우리가 사는 데에는 다른 이의 도움이 많다는 것을 잘 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산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잘 알게다. 또 한 해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도움을 하느님께 구해야겠다. 하여 늘 깨어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조상님들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서 이제 또 다른 다짐을 갖도록 한 해를 안겨주셨다. 경건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영원한 안식을 청하면서 차분하게 내일의 희망을 설계하자. 민족의 크나큰 명절인 설날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삼가고 조심하라.’라는 의미의 을 깊게 새기자. 이렇게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는 자신의 능력에 자신만만해 하지 말고하느님 은총과 조상들의 도움을 구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겠다.

 

새 옷과 새로운 마음으로 단장하면서 하느님 앞에 깨어 있는 시간이 더 많도록 다짐하자. 세속의 시간에 머무르기보다 성스러운 시간에 더 머물도록 기도하자. 오늘 우리는 바쁜 사회생활과 세속 생활을 떠나 가족의 귀중함과 민족의 일체감을 느끼는 명절의 기분을 맛본다. 친척들을 만나면서 공동체의 결속과 유대감을 새롭게 발견하며 행복을 느끼게 될게다. 더구나 믿는 우리는 자신의 뿌리가 가족과 조상을 넘어 하느님에게서 나옴을 새삼 발견하리라. “주님, 또 이 한 해 저희에게 평화를 내려 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설,행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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