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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2.1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17 조회수1,892 추천수4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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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7일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제1독서 이사 58,9ㄷ-1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9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10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11 주님께서 늘 너를

이끌어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네 넋을

흡족하게 하시며

네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시리라. 그러면 너는

물이 풍부한 정원처럼,

물이 끊이지 않는

샘터처럼 되리라.

12 너는 오래된 폐허를

재건하고 대대로 버려졌던

기초를 세워 일으키리라.

너는 갈라진 성벽을

고쳐 쌓는 이, 사람이

살도록 거리를 복구하는

이라 일컬어지리라.

13 ‘네가 삼가 안식일을

 짓밟지 않고 나의 거룩한

날에 네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네가 안식일을

 ′기쁨′이라 부르고 주님의

 거룩한 날을 ′존귀한 날′

이라 부른다면 네가 길을

떠나는 것과 네 일만

찾는 것을 삼가며

 말하는 것을 삼가고

안식일을 존중한다면

14 너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나는 네가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리게 하며 네 조상

야곱의 상속 재산으로

먹게 해 주리라.’

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복음 루카 5,27ㄴ-3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27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28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29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30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

나쁜 것이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아는 청년 한 명이

제게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이번에 지원한 회사에 취업을

 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이 청년의 바람대로

취업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취업된 것은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잘 되었다고

좋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이 청년이

회사 생활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입니다.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들도

마음에 들지 않고,

자신의 전공과 다른 것만

시키는 이 회사의 시스템에

적응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어떨까요?

 취업이 된 것이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저의 경험

한 가지를 말해봅니다.

전에도 한 번 새벽 묵상 글을

통해 밝힌 적이 있지만,

저의 글씨체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필인 저의 글씨체는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나쁜 것이라고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악필인

글씨체는 큰 도움을 줍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우선 노트에

먼저 적어놓고서 나중에

컴퓨터에 입력을 하는데,

그때마다 노트에 적힌

글씨들을 알아볼 수 없어서

다시 생각하면서

글을 써야만 합니다.

그러다보니 처음에 썼던

내용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면서 조금이라도 더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러다보니 악필인 글씨체가

좋은 것으로 제게는 다가옵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보면

세상에 과연 나쁜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혹시 스스로 나쁘다고

규정하면서 멀리했던 것은 아닐까요?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면으로 부딪힐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많아지는 것이고, 정면으로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좋은 것이 늘어만 갈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주님께서는 당시에 죄인이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쁜 사람이기에 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생각했지만 주님께서는 오히려

레위라는 세리에게 “나를 따라라.”

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로 삼으시지요.

또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과도 먹고 마십니다.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바로 나쁜 사람이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제외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사람은 구원의

 대상으로서 회개시켜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를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바로 오직 인간만이 자신들의

 기준으로 함께 할 사람,

가까이해서는 안 될 사람

등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고 나쁨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로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일에 함께

하는 바람직한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랑을 선택할 수 있다.
미소, 악수, 격려의 말,
친절한 인사, 도움의 손길...
이 모든 것이 사랑을 향해
내딛는 작은 발걸음이다.
(헨리 나우웬)

 

헨드리크테르브뤼겐, 성마태오를 부르심.
"따뜻한 격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성악가를 꿈꾸던 소년이
교습 선생님으로부터
“너는 성악가가 될
자질이 없으니 포기해라.
목소리가 마치 덧문에서
나는 바람 소리 같구나.”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끝까지 격려했고,
 이 격려에 힘입어 열심히
연습한 끝에 훗날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세계 3대
성악가 중의 한 명인
 ‘엔리코 카루소’입니다.
격려를 통해서 삶이 바뀐
사람을 말하면 이 사람을
 빼놓을 수가 없지요.
그는 초등학교 때에
집중력이 없고 쓸데없는
질문만을 던진다고 결국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집에서
아들을 직접 가르치면서
 계속 격려했습니다.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담긴 따뜻한 격려를
통해 삶 자체가 바뀌어버린
사례는 이 둘 외에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사람들을 향해
틀렸다고 또 잘못되었다면서
포기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어떤 말을 주로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면 받아들이지 못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묵상글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있는 중.

저의 악필을 보려면 거의 번역 수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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