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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만/구자윤 신부님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18 조회수1,485 추천수0 반대(0) 신고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만"

찬미예수님!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1월 마지막 주일이고

또 1월 마지막 날입니다.

예전에는 1월 마지막 주일을

나병 환자를 위한

구라주일로 지내다가

1990년 한국 주교회의

춘계 정기 총회에서

사회 복지 주일로 정해서

신자들에게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서

나누고 봉사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이제는

가난했던 시절에

다른 나라들로부터 받아 왔던

도움을 우리보다 더 어렵고

고통과 기아에 굶주리는

이웃나라에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주교회의는 2003년

추계 정기 총회에서

해외 원조 사업에 대한 올바른

홍보와 신자들의 의식

강화를 위해서 1월 마지막 주일을

해외 원조 주일로 지냅니다.

우리가 하는 오늘 특별 헌금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의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쓰여지게 됩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다소 차이는 있지만

자신만이 특별한 존재라는

우월감과 독점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분명하게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계획

즉 어떤 특정인이나

특정민족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생명의 길로

이르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은

자신들만을 위한 기적과

또 겉으로 드러나는

상황만을 보고 판단하는

편협한 마음과 편견으로

예수님을 배척하고

결국은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고 맙니다.

심지어는 벼랑 끝으로 끌고 가서

떨어뜨리려고까지 합니다.

이렇게 모든 예언자들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고향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았습니다.

 오늘 복음 서두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루카복음사가는 이 짧은 말로

나자렛에서 하신

예수님의 담화 전체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루카는 자신의 복음과

사도행전의 기초가 되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여기에 전하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의 핵심은

유다인들에게 처음 제시된

구원이 모든 민족들에게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계시는

예수님께서

가파르나움에서 이방인들에게

보이셨던 그러한 기적을

원하는 고향 사람들에게

회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또 예수님께 적개심을

갖게 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모습은

우월감과 특권의식에 젖은

사람들이 갖게 되는

특징적인 형태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다는 편협함과

편견에서 오는 태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면서도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했다는 루카의 기록에

고향 사람들의 심리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과거에

예언자들이 백성의 불충을

고발하기 위해서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기적을

행하였다는 사실을 언급하시자

화를 내면서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고 급기야는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나만 또는 우리만이라는 편협함과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편견을 깰 때

하느님의 사랑이 스며들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복음을 현재 자신의 생활 안에서

받아들여서 알아들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오늘'은

과거의 한 시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종족과 문화와 온 세상

또 모든 시대에

 적용하기에 그렇습니다.

 1독서에서 보면

예레미야의 삶은

권력을 쥔 사람들을

계속 거스르면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런 예레미야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어떤 누구도

예레미야와 맞서 싸워도

예레미야를 당해낼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편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정의를 실천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살기를 독려하고

 권고할 때  반대에 부딪치고

배척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의로움이

승리를 거둡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고

계시기에 그렇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비롯한

여러 예언자를 통해서

그릇된 길로 빠져드는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려고

많은 애정을 쏟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훈계와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거짓에

저항할 힘과 용기를 얻게 되고

끊임없이 박해를 받지만

결국 승리합니다.

이러한 모든 예언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생애가 암시된 것입니다.

  오직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은

순수한 사랑자체이십니다.

  그런 예수님을 직접 체험한

바오로 사도의 사랑의 찬가를

2독서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당시 코린토 사람들과

코린토 신앙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많은 문제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답변은

단 하나로 요약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인간관계 안에서 오는 모든

불협화음과 고통 불화와 불평

또 분열과 어떤 상처도

치유할 수 있는 묘약이고

또 묘안입니다.

한마디로 사랑은

바로 만병통치약입니다.

생명까지 바쳐가면서

인간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전 생애가

바로 사랑이셨고 또 예수님이

사랑자체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쉽게 남용되고

또 속되게 사용하는데

사랑은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최고의 명약이고

사람이 가장 인간다운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사랑은

소유하고 독점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편견도 특권의식도 없는

하느님께 대한 순수한

신앙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신앙 안에서

함께 나누고 베풀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시려는 구원은

바로 이러한 사랑을 통해서

온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잠시 묵상합시다.

(구자윤비오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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