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악의 세상에서 그래도 용서만이 / 사순 제1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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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8-02-20 | 조회수1,34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한때 ‘버려진 아이’였다는 것을 알고는 어머님에 대한 미움으로 자살을 결심한 한 여인이 눈 덮인 언덕길을 오른다. 언덕배기에 도착해 온 길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자신은 바로 걸었는데 눈 자국은 이리저리 비뚤어져 있다. 그녀는 깨닫는다. 인생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를. 그리고 어머니를 용서한다. 그 이후 그녀가 새롭게 변신한다는 게 일본인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氷点)’의 줄거리이다. 바르게 정말 바르게 걸었지만 자국은 뒤틀려 있더란다. 믿는 우리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에 늘 그분 뜻 헤아리며 살아야 할 게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주 비틀거리며 산길을 오른다. 그분께서 그토록 바라셨던 정의와 평화, 사랑이 넘치는 나라를 갈망하며 거기에 참여한다지만 흠투성이다. 분노가 치밀고 치가 틀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하며, 서로 용서하면서 세상의 온갖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살기를 기도하지만 웬걸 ‘복수의 끈’은 더 단단해 지기만 한다. 옛날 임금들은 현자(賢者)들을 곁에 두고 의견을 들었다. 유비에게는 제갈공명이 있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야말로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옳고 바른 뜻을 보여 주신단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의 뜻을 첫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담긴 내용이다. 당신의 십자가 죽음도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셨다. 그 가르침을 몸소 보여 주셨기에 부활의 영광을 이루었다. 그 부활은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신뢰의 결실이었다.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마태 6,9-13)’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기도인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셨다. 핵심은 그 어려운 용서이리라. 사실 용서만큼 어려운 게 없다. 용서하려면 먼저 ‘자신이 끊임없이 용서받고 있는 존재’라는 걸 인식해야 할게다. 살면서 그 누구도 잘못을 범하지 않은 이 있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하느님과 이웃으로부터 끊임없이 용서받았다. 이웃의 잘못을 떠올리기보다, 우리 자신의 잘못을 먼저 깨달아야만 한다. 많은 경우 우리는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한다. 우리의 조그만 편견 때문에 이웃에게 큰 불편을 준 일부터, 알게 모르게 범한 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죄들도 많으리라. 더군다나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유혹이 도사리리라. 내 죄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합리화하지만, 남의 잘못은 두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낸 적도 있었을 게다. 사실 우리는 늘 누군가로부터 용서받으며 살고 있다. 그러기에 ‘많이 용서받는 이가 많이 사랑한다.’라는 말도 있다. 남을 용서할 마음 없이, 건성으로 ‘주님의 기도’만 바치며 ‘하느님 나라’가 오기를 청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가 분명해진다.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셨기에 그분 뜻에 따라 바치면 그 어떤 유혹도 뿌리치는 놀라운 은총이 있으리라. 마음에 쌓았던 분노와 복수심까지도 용서하는 거룩한 사랑이 솟아날 게다. 악의 세상에서 그래도 용서만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게다. 이게 ‘주님의 기도’를 드리면서 새길 참 묵상거리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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