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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20.강론."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주십시오.”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20 조회수1,950 추천수0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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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6,7-15(사순 1 )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그 배경을 <루카복음>의 병렬부분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루카 11,1)

 

 이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이 제자들에게 충격을 주었음을 말해줍니다. 뭔가 이상했던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의 앞부분에서 말하고 있듯이,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주로 회당이나 한길 모퉁이 서서 위선자들처럼 드러내 기도하기를 좋아했고, 또 빈 말로 많은 말로 되풀이하며 이방인들처럼 기도했습니다(마태 6,5-8).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와는 반대로, 골방에 들어가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 기도하라 하시고, 또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시는 아버지시기에 빈 말이나 길게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그들의 관습적이고 의례적인 기도와는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이 너무도 달랐던 것입니다.

 당시의 유다인들에게는 3가지 기도문이 있었는데, 첫째는 쉐마로 우리가 <신명기> 6:4절 이하에서 들어라 이스라엘아로 시작되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에게 이 본문은 일종의 신앙고백으로 12세 이상으로 성인이 되면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2회씩 암송하며 기도하는 것이 의무였습니다.

 둘째는 쉐모네 에쉴레인데 18개의 기도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기도문을 아침, 오후, 저녁 하루 세 번씩 규칙적으로 암송하며 기도합니다.

 셋째는 카데쉬로 회당에서 설교 후에 참석자들이 드리는 짧은 암송기도문이었습니다.

 또한 당시는 로마의 억압과 과도한 새금 징수와 종교인들의 부패 속에서 메시아 대망사상이 팽배했고 종교적 민족적 부흥운동에 대한 열망이 고조되었고. 그들의 열망을 담은 기도문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기도를 가르쳐주십사고 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 주님의 기도의 탄생 배경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새 공동체의 원리와 삶과 질서를 담은 새 기도문이 요청되었던 것입니다. 곧 새로운 나라, 새로운 공동체로를 향한 혁명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산상설교”, 곧 새로운 하느님 나라의 윤리와 삶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것도 한 가운데 중심으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참된 행복과 함께, 새로운 나라의 삶의 원리와 질서의 중심으로 제시되고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루카복음>에 따르면, 그것은 저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 곧 개인의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의 기도이고 함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너희는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고 복수로 지칭합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처음 시작부터가 충격이요 혁명적입니다.

 하느님을 압바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건네주십니다. 곧 인간인 저희를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귀한 신원과 지위로 들어 올리십니다. 저희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시어, 당신과 함께 아들인 성자의 반열에 들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시편작가의 노래를 실현하십니다.

너희는 신이며, 모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시편 82,2)

 

 우리는 이 특전을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을 통하여 받았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충격은 그냥 압바가 아니라, 우리 압바인 것입니다. 곧 복수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한 형제라는 말입니다. 우리에는 시제가 없습니다. 곧 과거의 선조들과 예언자들을 포함하여 미래의 하느님의 자녀들까지를 포함하는 우리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로서의 삶의 원리가 기도로 주어진 것입니다. 곧 하느님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이들에게 걸 맞는 소명으로 주어집니다. 곧 자녀로서의 삶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이요, 자신이 바라는 나라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나라를 이루는 일이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빛나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생명의 빵으로 선사하신 당신 아드님을 양식으로 삼는 일입니다. 곧 당신의 아드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살며,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일입니다.

 또한 아빠 아버지의 일이신 용서하는 일을 하는 것이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시련이나 유혹과 악에서도 아버지를 신뢰하는 일이요, 자신이 스스로 구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의탁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유혹과 악을 제거해 달라거나 없애달라고 청하는 것이 아니라, 빠지지 않게 구해달라고 아버지께 청하는 일입니다. 바로 그것을 통해서 아버지께 마음이 향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곧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 속에서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것을 통하여 아버지를 만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다름 아닌 자녀의 길을 걸어갑니다. 오로지 아빠 아버지께 속해 있는 아들, 딸로서, 언제 어디서나 아버지의 뜻을 따라 길을 걷고자 합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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