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전례상징’] 파스카 신비에 푹 빠지게 하는 상징들(재, 불, 빛, 종) 이 년째를 맞이한 우크라니아 전쟁이라는 인재(人災)와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지진이라는 천재(天災)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했고, 셀 수 없는 부상자들도 발생했습니다. 이에 대해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기도와 관심, 그리고 실질적인 도움으로 동반하고 있습니다. 인재나 천재나 인간이 쉽게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하늘을 바라보며 그분을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그분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곧 죄로 인해 생긴 죽음 앞에서 인간의 미약함과 무력함은 극대화됩니다. 이천 년 전에 자신의 본 모습을 잃어버리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죄와 죽음 속에서 무력하게 방황하는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대신 수난을 받고, 죽고, 부활한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지요.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마태 11,21; 루카 10,13) 에곤 카펠라리는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에서 “재는 불과 정화된 흙의 요소”라는 자연적인 특성과 함께, 불사조가 재에서 새 생명을 얻어 나왔다”라는 신화적 개념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부활 희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부활하여 자신의 역사인 흙과 재가 심판의 불꽃을 거쳐 정화된 후 하느님 곁에 올라 영원히 머물게 된다고 믿습니다.” 재의 수요일에서 재를 축복하며 바치는 기도에서 흙의 한 요소인 재가 바로 우리 자신임을 깨닫고, 사순시기에 정화의 과정인 재계를 정성껏 지켜서 성자처럼 부활의 영광을 누리길 기원합니다. “저희가 바로 재임을 알고, 먼지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사순시기에 정성껏 재계를 지켜 죄를 용서받고 새 생명을 얻고, 부활하시는 성자의 모습을 닮게 하소서.” 재를 얹는 예식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하찮고 용서가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기 위해서 재계를 통한 정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성자를 통하여 신자들에게 사랑의 불을 놓아주셨으니”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는 ‘빛의 예식’으로 시작합니다. 이 예식은 ‘불 축복’으로 시작합니다. 불이 가지는 자연적, 인간적, 영적 의미에 대해서 로마노 과르디니는 ‘거룩한 표징’에서 이렇게 서술합니다. “불이란 생명과 통하는 것이다. 생활한 우리 영혼의 가장 순수한 상징이다. 우리 내심의 가장 산 체험들의 상징이다. 따뜻하고 빛나며 언제나 생동하고 언제나 위로 오른다. (…) 불은 우리 내심의 표상으로, 상승하며 빛나는 강한 정신의 표상으로 타오르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대와 감실에 불을 켜두는 것은 그것이 우리 생명의 상징이며 표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의미와 함께 불 축복 기도에서는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사랑의 불’에 감사드리며 천상의 삶으로 이끌어 달라고 청합니다. “하느님, 성자를 통하여 신자들에게 사랑의 불을 놓아주셨으니 새로 마련한 이 불을 거룩하게 하시어 저희가 이 파스카 축제를 지내며 천상의 삶을 갈망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영원한 빛의 축제에 참여하게 하소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님, 이 빛으로 저희 마음과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소서”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처음으로 “빛이 생겨라”(창세 1,3)하셨고, 지혜문학에서 “정녕 빛은 달콤한 것, 태양을 봄은 눈에 즐겁다.”(코헬 11,7)라고 감탄한 것을 보면 빛의 근원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밝혀줍니다. ‘재’나 ‘불’처럼 ‘빛’도 생명과 근본적으로 연결됩니다. 생명은 빛을 필요로 하고, 생명체는 빛을 향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세상의 빛”(8,12)이라고 하시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14,6)이라고 계시하십니다. 또한 그분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4,14)이라고 희망찬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1,4)이기에 그리스도인은 그분을 향해 나아가고 그분과 함께 있다 보니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빛의 예식 중에 사제는 새 불에서 파스카 초에 불을 댕기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님, 이 빛으로 저희 마음과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소서.”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하고, 빛은 어둠에서 분간할 수 없었던 것들을 식별하여 몰아낼 수 있도록 합니다. 예식에서 파스카 초의 빛이 세상에 퍼져나가는 것을 점진적으로 드러냅니다. 부제(또는 사제)가 파스카 초를 높이 들고 “그리스도 우리의 빛”이라 세 번 외치면 신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합니다. 처음에 사제는 파스카 초에서 자기 초에 불을 댕기고, 두 번째에는 신자들 전체에게 불을 댕겨주고, 세 번째에는 독서대 옆이나 제단 안에 마련된 큰 촛대에 파스카 초를 놓을 때 성당 안의 불을 모두 켭니다. 그리고 제대 초는 구약의 마지막 독서와 화답송과 기도가 끝나면 파스카 초에서 불을 밝힙니다. 사제가 대영광송을 시작하면 모든 이가 함께 노래한다. 그동안 지역 관습에 따라 종을 친다. ‘성주간 파스카 성삼일’ 예식서에서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에서의 종의 사용에 관한 세부지침을 보면서, 떠오르는 그림이 밀레의 ‘만종’입니다. 멀리 보이는 성당 종소리에 맞추어 들판에 있던 가난한 부부가 가만히 고개 숙여 기도하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성당 종소리를 듣는 모든 신자가 기도하는 전통은 언제부터 유래했을까? 전례역사가인 엔리코 카타네오는 ‘서방 그리스도교 예배’에서 1264년 교황 우르바노 4세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새로 제정하였고, 이와 연관하여 “성당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축성되는 순간에 집과 작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경배하도록 종을 울리는 관습이 확대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전통에 따라 현재도 성변화와 연관된 ‘성령청원’과 ‘성찬 제정과 축성문’ 때에 종을 사용합니다. 파스카 성삼일의 시작인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대영광송 때부터 종을 치지 않는 것은 8세기부터 시작되었고, 주님의 수난을 동참하기 위해 기쁨을 멀리하며 검소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시입니다. 축제의 악기인 종과 오르간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귀의 단식’, 천으로 십자가와 성화를 가리는 것은 ‘눈의 단식’이라 하지요. 성삼일 동안 오르간이나 다른 악기 사용을 금지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반주를 위해서는 오르간이나 다른 악기 사용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파스카 시기의 상징들과 함께 주님의 부활 영광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4월호, 윤종식 디모테오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