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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23 금/ 거룩한 치열함으로 살아내는 사랑실천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22 조회수1,578 추천수6 반대(0) 신고




사순 1주 금, 에제 18,21-28; 마태 5,20ㄴ-26 (18.2.23)

“먼저 형제를 찾아가 화해하여라.”(마태 5,24)





Teaching about anger


 



거룩한 치열함으로 살아내는 사랑실천

 

제 1차 바빌론 유배 전후로 유다는 혼란과 위기를 맞습니다. 그럼에도 유다는 이집트와 바빌론 양대 세력이 서로 견제하고 있기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었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런 방심과 무사 안일함 속에 있는 백성들을 향하여 하느님과 집단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하지만 말고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에제키엘은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에제 18,21) 생명을 얻으려면 자비로우신 주님께 돌아가야 함을 간곡히 권고한 것이지요. 그러나 백성들은 예언자의 소리에 귀를 닫아버립니다. 그 결과 587년에 예루살렘은 멸망하고 맙니다.

회개하지 않고 죄와 어둠에 머물려는 사람은 건널 수 없는 죽음의 계곡과 패망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자신의 삶과 사랑에 책임을 짓지 않고 회피하거나 남의 탓만 하는 사람은 영이 헷갈려 주님을 만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나를 부르는 사랑 찾아 참 회개의 여정을 떠날 때임을 알아차려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5,20) 곧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삶을 살라는 것이지요. 안일함의 잠을 깨워 간절함과 열정과 헌신의 자세로 주님의 뜻을 실행해야겠습니다.

남에게 해코지를 않고 남보기에 착하게 사는 것만으로 결코 좋은 제자라 할 수 없겠지요. 십계명과 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신앙인의 도리를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참 신앙인은 소극적으로 피해 안 주고, 하라는 것만 하는 유아적 자세에서 벗어버려야 합니다. 더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 일치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함께하며,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해야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살인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한걸음 더 나아가 성내거나 ‘바보’, ‘멍청이’라고 말함으로써 평화를 깨뜨리며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라 하십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관계 안에서 바라보시고, 사람 안에 있는 작은 생명의 단초까지도 존중하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늘 '한 걸음 더' 그리고 ‘보다 더’의 자세로 살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요구에 성실히 응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잠든 영적 감수성을 일으켜세워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늘 하느님 앞에 자신을 둠으로써 주님의 영을 호흡해야겠지요. 그란 끊임없는 수련이 있을 때 우리는 주님을 더 갈망하는 가난한 사람이 되어 하느님의 마음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내 안에 타오르게 되는 사랑과 선과 의로움의 불꽃은 결국 거룩한 치열함을 낳습니다. 이 거룩한 치열함 안은 무관심과 무감각의 잠을 깨울 것입니다. 그렇게 깨어 있는 사람은 분노, 폭언, 멸시와 증오, 관계 단절과 같은 평온과 일치를 깨뜨리는 행동을 그만 두고, 능동적으로 이웃에게 달려갑니다.

오늘도 무딘 영적 감각을 깨워, '한 걸음 더', '보다 더', ‘아직도 더’의 자세로 주님과 이웃에게 다가가 사랑을 실천하도록 힘썼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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