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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매일묵상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23 조회수2,090 추천수4 반대(0) 신고

 

 

당당하고 영예롭게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는 오늘 날로 치면 터키 지역인 스미르나의 지역의 목자로 사도직을 수행하셨습니다. 요한 사도의 직제자였던 그는 스승을 따라 가톨릭 정통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습니다. 동시에 당시 초세기 교회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흔들어놓던 이단 척결을 위해 앞장섰습니다. 깊은 신앙과 탁월한 인품의 소유자였던 그는 당시 그리스도교 신자들로부터 존경과 흠모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당시 그리스도교 교회는 혹독한 박해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폴리카르포 주교님께서는 비록 주교직을 수행하고 계셨지만, 하루 하루의 삶이 마치 살얼음 판 위를 걷는 듯 위태위태했습니다. 번듯한 교구청도 없었습니다. 탄탄한 교구 조직도 없었습니다. 언제 불어닥칠지 모를 박해의 칼날과 순교의 때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마침내 올 것이 왔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주도한 대대적인 그리스도교 박해로 인해 폴리카르포 주교님은 체포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적대자들로부터 갖은 수모와 치욕을 당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교 신 앞에 제사바칠 것을 강요당했습니다. 적대자들의 협박을 의연히 뿌리친 폴리카르포 주교님께서는 기원 후 156, 당시로서는 무척 장수(長壽)한 나이인 86세 때, 스미르나 시내의 경기장에서 화형으로 순교하셨습니다.

 

폴리카르포 주교님의 순교 장면이 얼마나 영웅적이었으면, 당시 목격자가 상황을 세밀히 기록했고, 그 순교록이 아직도 우리 손에 남아있습니다. 그가 지상을 떠나가는 마지막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끔찍한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라면, 아무리 강심장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부들부들 떨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깊은 신앙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얼굴이 사색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순교 현장에 등장한 폴리카르포 주교님의 모습은 너무나 당당했습니다. 화형의 도구인 높게 쌓아올린 장작더미를 마주했지만, 마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개선장군의 모습처럼 늘름했습니다. 머지 않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동참하리라는 기대감에 그분의 얼굴은 광채로 빛났습니다.

 

 

폴리카르포 주교님의 화형은 당시 경기장 내에서 치러진 순교 이벤트의 파이널 경기이자 메인 이벤트였습니다. 몇몇 순교자들에 대한 처형이 모두 끝난 다음, 마지막으로 폴리카르포 주교님의 순서가 잡혀 있었습니다. 화형이 시작되기 전 총독이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죄인 폴리카로포! 만일 그대가 지금 이 자리에서, 그대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한다면, 즉시 그대의 목숨을 살려줄 것이다.”

 

 

그러자 폴리카르포 주교님께서는 큰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내가 86세가 되도록 섬겨온 그분은 나의 왕이며 구세주이시고, 또 나를 조금도 해치지 않으신 그분이신데 어떻게 배반할 수 있겠는가?”

 

 

화형이 시작되고 나면 너무 뜨거운 나머지 어떤 죄수들은 장작더미 위에서 뛰어내려 형집행이 지연되곤 했기에, 사형집행인들은 폴리카르포 주교님을 장작더미 위에 올린 다음 끈으로 묶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대못을 몸에 박아 단단히 고정시키려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주교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힘드신데 괜히 고생들 하지 마시고 그대로 두십시오, 저에게 불을 견딜 힘을 주시는 주님께서는 그대들이 굳이 못을 박지 않더라도, 제가 장작더미 위에서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서 있는 것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장작더미 위에 올라가신 폴리카르포 주교님께서는 두 팔을 하늘을 향해 활짝 벌리고 장엄하게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사랑하고 찬미하올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계시(啓示)하신 성부여, 저로 하여금 순교자의 반열에 들게 하시고 성자의 수난의 잔을 같이 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이날 이때를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진심으로 당신을 찬미합니다.”

 

 

폴리카르포 주교님께서 마지막으로 아멘!”하며 기도를 마치셨을 때, 사형 집행인들은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습니다.

 

 

피를 흘리는 박해시대는 지나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시대 또 다른 순교자들의 탄생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사랑의 순교자, 땀의 순교자, 인내의 순교자, 용서의 순교자들입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매일 우리와 한 지붕 아래 몸붙여 살아가는 이웃들과의 관계 안에서, ‘나와 다름으로 인해 파생되는 갖은 상처나 고통들을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기꺼이 견뎌내는 사랑의 순교자들이 더 많이 필요로 하십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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