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2월 23일(먼저 형제를 찾아가 화해하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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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02-23 | 조회수1,521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2월 23일 [(자)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말씀의초대 에제키엘 예언자는,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제1독서◎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말씀입니다. 18,21-28 이렇게 말씀하신다.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때문에 살 것이다.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주 하느님의 말이다.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고, 역겨운 짓을 따라 하면, 살 수 있겠느냐? 기억되지 않은 채,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다.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들어 보아라. 내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냐?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반드시 살 것이다.” ◎화답송◎ 시편 130(129),1-2.3-4.5와 6ㄴㄷ-7ㄱ.7ㄴㄷ-8(◎ 3)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주님,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주님, 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 애원하는 제 소리에, 당신 귀를 기울이소서. ◎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니, 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리이다. ◎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이스라엘이 주님을 더 기다리네. ◎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바로 그분이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리라. ◎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복음환호송◎ 에제 18,31 참조 찬미받으소서.)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찬미받으소서.) ◎복음◎ <먼저 형제를 찾아가 화해하여라.> 복음입니다. 5,20ㄴ-26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에게 말한다.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예물을 바쳐라.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오늘의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형제에게 성을 내거나 모독하는 일까지 금지하십니다. 분노와 모욕이 모든 분쟁의 발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마음 안에 깃든 모든 악한 요소들을 뿌리 뽑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십니다. 이어 형제와 불화 중인 사람은 그와 먼저 화해한 다음에 하느님 대전에 예물을 드리라고 명하십니다.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더욱이 용서를 청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 커녕 계속하여 불의한 행동을 한다면 과연 그를 어떻게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습니까? 이유는그 사람이 행한 것이 아직도 자신에게 아픔으로 남아 있어 스스로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고는 그 아픔을 느낄수록 용서로부터 멀어진다고 생각하지요. 물론 용서한다고 해서 아픔이 단번에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아픔 때문에 용서하지 못한다면 그 아픔은 더욱 깊어질 것이 아닙니까?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미움과 같은 가시를 빼내고 진정 내 안에 평화가 넘치도록 하기 위함이지요. 회개하도록 오히려 그들을 위해 우리가 선한 일을 해야 하지요. 예수님께서도 죄인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치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온갖 상처투성이인 인간관계, 병든 사회 구조를 치유해 나갈 수 있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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