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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살다 보면 언젠가 미운 그이가 / 사순 제1주간 토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24 조회수1,488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람들은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렸을까? ‘자연, , , 그리고 하느님으로 묶인 체계가 하나임을 몰랐기에. 하느님의 유전자를 지닌 존재는 모두 한 덩치이고 공동체(共同體 ; 한 가지 , 한 가지 , )’이다. ‘라는 이는 이 공동체의 틈새에 산다. 평생 쌀 한 톨도 수확해 본적이 없지만 굶지 않는다는 게 그 증거일 게다. 이곳에는 완전하신 분과 그분 사랑이 있다. 완전하게 되는 길은 하느님 사랑 속에 있는 것이며, 그를 위해 내 안의 작은 사랑을 크게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이 삶이다.

 

이 사랑을 가로막는 것은 미움이요 시기이다. 그것은 어쩜 단절이다. 예수님께서는 용서와 사랑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공동체로 살고자 하는 이유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해서이며,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께 다가가는 길이다. 사랑은 하느님의 유전자이다. 사람이 하느님을 가장 닮는 순간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이다. 그분께서는 모두에게 땅과 하늘, , 공기와 물을 주시면서, ‘사랑하라!’라고 하셨다.

 

사랑은 혈육 간이 가깝고 원수 간이 멀지만 하느님 사랑에는 그 어떤 거리도 없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참으로 많이 듣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지? 마음으로 그저 되는 게 분명 아닌데도. 좋은 방법은 원수를 안 만드는 일일게다. 허나 살면서 원수는 아니지만 미운이가 분명 생긴다. 한방에 미워진 건 아니다. 그가 미운 짓을 했기에 미운 감정이 쌓인 것일까? 아니 내가 미움을 줬기에 되받은 건가?


그러면 이왕 미운 이가 있다면 어떻게 풀어야지? 무작정 잊고는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네 감정은 그렇게 이론적이지만은 않으리라. 무엇보다 먼저 시간이 요구될 게다. 미움이 쌓인 세월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떤 시간은 분명 요구된다. 그걸 무시하고 곧바로 그 자리에서 털어 버리려 하기에 생각지도 않던 더 큰 문제가 생기더라나. 감정은 스스로 녹아내리는 거지, ‘털어 버리는 게분명 아님은.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4-45)’

 

이렇게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분의 가르침은 알아듣기가 참으로 어렵다. 먼저 우리에게 원수란 과연 있는가가 의문이다. 원수는 없는 것 같은데 미운 이가 가슴에 남아 있다. 사람들은 그들을 웬쑤라 한다. ‘그 웬쑤!’라면서 이까지 갈더라. 제게도 몇 놈 있다. 멀리도 아닌 아주 가까이에, 심지어 한 집안에 있는 경우도 있을 게다.

 

그 원수와의 미움은 항상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 내가 아무리 그를 미워한다 해서 그가 벼락 맞거나 사고를 당 할리 없다. 미워하는 만큼 나 자신만 되레 불편해질게다. 미움은 또 다른 미움을 낳는다나. 미움은 친구조차 하루아침에 원수로 만든다. 반대로 사랑은 예수님이 그토록 강조하신 그 원수조차 친구로 만든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면 그이 떠나면 이내 좌절할 수밖에. 이는 사랑의 끝이 자신이 아닌 라는 남이기에. 그래서 남이 나를 어떻게 하는지가 아닌, 사랑은 내가 먼저라는 점을 갖자. ‘사랑은 감동을 주는 행위이다. 예수님은 누구누구 절대 가리지 말라면서 그 웬쑤까지사랑하시란다. 그토록 미운 이까지도 주라신다.

 

어디 햇빛이 누구누구에게만 내리 쬐이고, 비가 사람 봐가며 내리지 않는단다. 용서를 위해 어떤 때는 용감히 투자도 해야 할 게다. 지나간 것은 지나가 버린 것’,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마냥 붙잡고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건너뛰어야 하리라. 그게 잘되면 정말 감동을 불러온다. 그토록 미운 그 원수에게도 감동을 안겨줄게다.


보통은 원수를 쉽게 사랑할 수 없다. 나에게 잘 대해 주고 나를 위하여 희생하는 이에게는 무관심하면서까지 원수를 사랑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누가 들으면 웃을 일이다. 그러니 먼저 나에게 잘 대해 주는 이부터 사랑하고 그에게 보답해야 한다. 이게 순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날엔가 미운 그이가 곁에 서리라. 은총이 끌어 준 것일까? 미움이 지나면서 이렇게 사랑이 생겨난다.

 

그분께서는 악인이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비를 똑 같이 내려 주신단다. 그러니 원수까지도 사랑하자. 오늘도 나를 그토록 성가시게 군 그 자를 위해 기도하자. 흔히 사랑이란 가슴으로 하는 것이란다. 자신의 마음이 움직였을 때에 미움마저 사랑이 될 게다. 한평생 살다 보면 언젠가 미운 그이가 곁에 서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원수,사랑,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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