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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25.강론.“이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25 조회수1,411 추천수1 반대(0) 신고

 

 

마르 9,2-10(사순 2 주일)

 

 오늘은 사순 2 주일입니다.

 오늘 <1, 2독서><복음> 말씀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말 한마디는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1독서>에서, 주님의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창세 22,17)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준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로마 8,32)

 

 그리고 <복음>에서, 성부께서는 예수님의 세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이 세 이야기는 모두 산에서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1독서>는 모리야의 산에서, <2독서>는 갈바리 산에서, <복음>은 타볼 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처럼, 산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1독서>에서 주님의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말한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준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창세 22,2)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사랑하는 것을 바쳐라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것이 있는지요? 이 지상에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직 남아 있는지요?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말입니다.

 만약 있다면, 그것을 모조리 살라 바쳐라 하십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끔찍이도 사랑했습니다. 늦게야 얻은 아들, 그것도 자신이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해줄 보증수표인 아들, 이 소중한 아들을 그는 너무도 사랑했습니다. 그는 바로 아브라함 자신의 분신이요, 자신의 미래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 소중한 아들을 온전히 바쳐라 하십니다. 그를 통해서 민족들의 조상이 되리라는 그 희망도, 그 믿음도, 그 사랑도, 그야말로 전부를 다 바쳐라 하십니다. 나아가서 자신의 전부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미래와 종족의 미래까지도, 온전히 모조리 바쳐라 하십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요, 무조건적인 수락의 요청이었습니다. 그 이끄심에 따라, 아브라함은 비로소 자신의 희망과 믿음과 사랑 때문에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희망과 믿음과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순명하였습니다.

 이를 가리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로마 4,18)

 

 그러나 당신께서 아브라함을 벼랑으로 끌고 온 것은 그를 벼랑에서 떨어트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벼랑을 건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벼랑 건너에는 더 낳은 미래가 펼쳐져 있는 까닭이었습니다. 이 진정한 미래를 주기 위해서는 벼랑까지 끌고 와야만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야만이 그릇된 희망과 믿음과 사랑이 정화를 받을 수 있는 까닭이었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모두가 은총이었습니다. 이 모두는 믿음에 따라 이루어진 은총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의 말합니다.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로마 4,16)

 

 <1독서>가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들인 이사악을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치는 희생에 대한 이야기라면, <2독서>는 반대로, 이제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드님을 인간을 위해 내어주신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당신의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준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는 바로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에 따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그 분 말씀 아래에 머무는 일입니다. 들려오는 말씀이 내 안에서 성취도록 말씀께 승복하는 일입니다. 말씀께서 나를 맘껏 쪼물딱거릴 수 있도록 말씀께 자신을 허용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초막으로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자신을 그야말로 말씀이 이루어져야 할 공간이요 장소로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오로가 말한 것처럼, 이 건물(초막)은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게 될 것입니다.’(에페 21-22 참조)

 그것은 말씀의 힘을 수락하는 일이요, 변화의 힘이신 말씀께 자신을 건네 드리는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말씀을 주인 되시게 해 드리는 일이요, 주님을 주님 되시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변모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대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의 모습으로 바뀌어 걸 것입니다(2코린 3,18 참조)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분의 말씀을 듣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의 말씀을 듣는 것이 바로 우리가 그분의 사랑에 따라 사는 일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오늘 우리 자신을 아버지께 번제물로 드리는 일입니다. 외아들 예수님과 함께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일입니다.

 이렇게 그분께 순종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변모될 것입니다. 이 변모가 바로 사순절의 근본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그리스도의 신성에 참여하게 되는 일이요,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신성이 우리에게서 드러나는 일입니다.

 오늘 진정 변모되기를 바라는지요? 그렇다면 그분의 말씀을 들을 일입니다. 진정 거룩해지기를 바라는지요? 그렇다면 그의 말씀을 믿을 일입니다. 진정 하느님 되기를 바라는지요? 그렇다면 그분의 말씀에 순명할 일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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