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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넌 틀렸어, 물론 나도 틀렸고
작성자김리원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03 조회수2,776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8년 나해 사순 제3주일


<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


   복음: 요한 2,13-25






그리스도


엘 그레코 작, (1606), 톨레도 주교좌 성당


 

넌 틀렸어, 물론 나도 틀렸고는 마크 맨슨의 책 신경 끄기의 기술한 꼭지 제목입니다. 여기에서 작가는 “‘자아를 찾아라와 같은 말을 따르는 건 위험하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스스로를 특정한 역할이나 쓸데없는 기대에 옭아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잠재력과 기회를 자기 발로 차버릴 수도 있다. 너 자신을 절대 알지 말라. 그래야 끊임없이 노력해 깨달음을 얻게 되며, 자신의 판단을 과신하지 않고 타인의 생각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확고한 자기정체성이나 자아실현, 혹은 확고부동한 신념이나 사회비판이 판치는 이런 시대에 자아를 찾지 않아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지 못하는 흐리멍덩한 상태로 살아가라는 충고는 약간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은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입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공감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의 지론은 모든 사람은 진리를 향해 달려가는 도정에 있기 때문에 누구도 완전히 옳은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옳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있는데 세상을 파괴하고 사람을 괴롭히는 이들이 바로 이런 신념이 확실한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히틀러도 그랬고 빈 라덴도 그런 자신의 생각의 옳음에 대한 확신을 가진 인물들이었을 것입니다.

 

1988년 작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메러디스 머랜은 심리 치료를 받던 중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37세가 되어서야 아버지에게 이 일을 따졌고 이런 충격적인 사실을 가족에게 털어놓았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결국 가족은 파탄이 나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1996년 메러디스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실은 자신이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순수한 의도로 만났던 심리 치료사와의 상담 과정에서 이런 기억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아버지와 화해하고 이전으로 가족을 돌리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흩어진 가족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메러디스는 그의 자서전 나의 거짓말: 거짓 기억에 관한 진짜 이야기에서 자신이 그런 기억을 만들어내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녀는 물론 처음부터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혼도 실패하고 남자관계가 잇따라 실패하다보니 남성에 대한 적대감까지 생기게 되었고 이에 페미니스트가 되어 아동 학대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동 성추행을 조사하던 중 실제 근친상간 피해 여성과 동성애에 빠지게 됩니다.

이를 알게 된 아버지와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고 메러디스는 심리 치료에 거의 강박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심리 치료사들은 매러디스가 불행한 건 일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인간관계가 잘 풀리지 않아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무언가 더 심층적인 원인도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유년시절의 기억을 찾아내던 중 그가 어렸을 때의 기억을 조작하여 자신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 합리화를 스스로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날마다 근친상간과 아동 성추행을 조사하는 페미니스트였고 평생 남자관계에서 실패했으며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은 근친상간 피해 여성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을 아버지에게 돌리게 된 것입니다.

기억은 합리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에 따라 효율적으로 조작될 수 있기에 그것을 확실히 믿어버리면 이런 상황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너 자신을 믿어’,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해라는 말을 따랐다가는 가족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인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믿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정화되어야 하는 오염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아는 뱀입니다. 뱀을 믿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은 성전정화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사꾼들로 가득한 성전을 채찍을 만들어 정화시키는 내용입니다. 성전은 바로 우리 자신을 말합니다. 채찍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당신 성령으로 우리를 정화하여 하느님의 온전한 성전으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자신만 옳다고 여기는 이들은 자신이 성전임을 인정하기보다는 예수님의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자신들이 하는 행위로 채찍을 만들어 그렇게 못 하는 사람들을 질책합니다. 자신은 판사이고 경찰이고 무엇이든 남의 탓을 찾으려고만 하는 상담 치료사인 것입니다(직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 앞에 죄인으로 앉아있어야 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 나름이겠지만 이런 사람들 앞에 있으면 숨이 막힙니다. 웬만하면 피해야합니다.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는 이런 사람들은 너는 틀렸어!”라고만 말하지, “물론 나도 틀렸고!”라는 말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는 틀렸어!”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진리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하지만 그분까지도 십자가를 지시며 저도 죄인입니다!”라고 하느님께 고백하신 분입니다. “내 탓입니다가 빠진 채 심판만 하려는 사람은 그저 자신이 하느님의 위치에 서려는 것뿐입니다.

 

작가는 또 자신의 스토커가 되어버렸던 옛 애인에 대해 이야기해줍니다. 에린은 아이비리그를 나온 아주 똑똑한 변호사였습니다. 한 달을 사귄 뒤 에린은 마크에게 자신의 집에 들어와 살라고 했습니다. 작가는 집이 멀기도 하고 좀 이상해서 거부를 했고 연락처를 삭제했는데 에린은 죽어버리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녀는 몇 년 전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가 실제로 얼마 동안 죽었다 기적적으로 소행한 경험이 있는데 그 이후로 매우 영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 치료와 천사, 민간 신앙, 타로에 빠졌습니다. 그는 자기치유 능력이 있으며 타인의 감정을 읽을 수 있고 미래를 볼 수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마크를 만나 함께 세계를 구할 운명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크에게 우리는 죽음을 치유할 운명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에린은 마크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였는데도 수천 통의 메일을 보내며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고 7년 넘게 괴롭히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는 직장에서 이 정도 능력이 있다거나 어느 정도의 수준의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거나 혹은 어느 정도의 연봉을 벌어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동료가 먼저 승진하거나 다른 사람의 배우자가 더 나은 것을 보면 참지 못합니다. 이렇듯 자신에 대한 확신은 고통뿐이고 그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고통만 받으면 목적지에 도달해도 공허감만 남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믿으라는 그 어떤 종교나 사상, 민간신앙 등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가톨릭교회는 자신을 믿지 말라고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자연은 불확실성의 원리에 의해 움직입니다. 파리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줄 알면 쉽게 손으로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파리조차도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모릅니다. 본능으로 움직이는데 그것이 불확실하여 자신을 생존시키는 것입니다. 빛은 그 빛이 입자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입자로 보이고 파장으로 믿는 사람에게는 파장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모든 것은 불확실한데 자신이 확신하면 그 불확실한 것까지 확실한 것으로 보이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믿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리고 그 확신이 옳다고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것도 매우 위험합니다. 그렇게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은 뱀입니다. 모두가 뱀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뱀은 선악과를 따 먹어도 절대 안 죽는다고 말합니다. 이런 자신의 생각을 믿어버리는 것이 죄의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으로 우리를 정화하실 때 이 뱀을 쫓아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알게 되는 것이 유일하게 하느님만 진리이시고 하느님만 믿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확신에 차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저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교과서 같은 이야기만 해 댔습니다. 돌아오는 반응은 그걸 누가 몰라?”였습니다. 저만 알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알아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아는 것을 다 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틀린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나도 틀렸습니다. 다만 어제보다는 오늘 더 조금 틀리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우리 안에서의 정화란 바로 베드로 사도처럼 자신이 옳다는 확신에 차서 하루에 일곱 번만 용서하면 되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에서 하루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하여 앞으로 또 언제 배반하게 될지 모르는 자신을 두려워하여 겸손한 사람이 되고 모든 죄인을 품을 수 있는 더 큰 죄인처럼 느끼게 되는 것뿐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때는 자신을 믿지 않을 때였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믿게 될 때 물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우리는 채찍 든 예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채찍에 맞으며 우리도 틀렸음을 깨닫는 정화되어가는 과정의 성전입니다. 나를 믿지 않을 때 마치 어린이처럼 하느님만을 순수하게 믿을 수 있게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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