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한국에 전래된 천주교회27-6 성직자 영입운동이승훈이 세례를 받고 돌아온 후 천주교는 하나의 종교로써 받아들여졌고 신도들의 집회도 잦아졌습니다. 그 후 도처에서 박해가 일게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탄압 속에서도 신도들은 북경의 주교에게 성직자를 보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구베아 북경 주교로부터 선교사 파견의 약속을 받을 수 있었고 그 결과 1794 년 말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조선 교회에 파견되었습니다. 주신부의 노력과 신도들의 열렬한 전교활동의 결과로 조선땅의 가톨릭 교회는 크게 발전할 수 있었는데 그의 입국 당시 4000 여명에 불과하던 교세가 1800 년경에는 1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신도들은 특히 명도회란 신심단체를 조직해서 서로 교리를 익히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특히 초대 회장인 정약종은 '주교요지'라는 순 한글로 된 교리서를 편찬하기도 하였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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