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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기본교리(27-7 조선교구 설정)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08 조회수1,842 추천수0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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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한국에 전래된 천주교회
27-7 조선교구 설정
천주교는 사상적, 사회적,
정치적인 이유에서 탄압을 받게 됩니다.
사상적으로는 유교의 양반사상과
천주교의 평등사상이 마찰을 빚었으며,
사회적으로는 천주교 신도들이 제사를
드리지 않으므로써 전통적인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집단으로
공격받게 되었고, 정치적으로는
당파싸움의 방편으로 천주교를
이용하였습니다.
1801 년의 큰 박해로 주문모 신부의
교 등 교회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박해를 피해 뿔뿔이 흩어졌던
신도들은 점차 새로운 신도집단을
형성하면서 무엇보다 성직자
영입운동을 서두르게 되었습니다.
  교회 재건에 힘쓴 정하상,
신태보, 유진길, 조신철 등은
수시로 북경을 내왕하고 또는
밀사를 파견하여 북경 주교에게
지속적인 선교사
파견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은 교황에게도 1811 년과
1825 년 경 두 차례의 서한을
보내어 조선 교회의 딱한 사정을
알리고 선교사 파견을 간곡히
요청하였습니다.
따라서 교황청에서는
1831 년 9 월 9 일에 교황교서를
통해서 조선 교회를 북경교회로부터
분리 독립하여 조선교구로
승격시키면서 초대 주교로
 파리 외방전교회원 브뤼기에르
주교를 임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 땅에 입국하려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만주에서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1837 년에야 2 대 교구장
앵베르 주교가 입국하게 되었고,
이로써 명실공히 독립을 이뤄
드디어 이 땅은 완전한 교회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 대 교구장 앵베르 주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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