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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3.1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10 조회수2,509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8년 3월 10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제1독서 호세 6,1-6

1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2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3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4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5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찍어 넘어뜨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로

들을 죽여 나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르게 하였다.
6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복음 루카 18,9-14

그때에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어떤 작가님은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는 것이

제일 싫다고 합니다.

소위 음치, 박치라는 노래를 못하는

조건은 다 갖추고 있었거든요.

그러다보니 노래방 가는 것이

얼마나 싫었겠습니까?

 자신이 노래를 부를 때 누군가가

웃고 있으면 노래 못한다고

비웃는 것 같고,

다른 곳을 보고 있으면

내 노랫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다보니 큰 열등감에 빠졌지요.

그래도 친구들이 좋다고 다들 가는

노래방에 따라가지 않을 수도 없고,

이 안에서 노래 부르지 않고

박수치고 있으면 분위기를 깬다고

억지로 노래를 시키니 곤욕 중에서도

이런 곤욕이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점차 미워졌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열등감이 커졌습니다.

그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이런 생각을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했다고 합니다.
“내가 친구들보다 노래는

못해도, 글은 더 잘 써.”
그런데 아무리 이런 생각을

해도 미움과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고민을 다른 지인에게

털어 놓으니

이렇게 생각해보라고

권했다고 합니다.
“친구가 노래하는

것을 즐거워하니

나도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노래

들어주는 것도 즐거워.”
그 결과 노래 자체도

 좋아졌다고 합니다.

노래가 싫고 이렇게 권하는

친구가 싫었는데,

모두 좋은 것이 된 것이지요.

생각을 전환하고 행동을

바꾸면 만족과 함께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상대와 비교해서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각자 즐겁고 의미 있는

행위를 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비교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이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비교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판단과 단죄의 행동을

하게 되면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스스로의 행복은 비교가 아니라

인정하고 그 안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할 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바리사이는 열심히 기도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감사해하고,

자신이 봉헌한 것들을

자랑삼아 이야기하지요.

그러나 세리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도 많을 텐데도 그들과

비교하면서 판단하거나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의롭게 되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까?

바로 세리였습니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비교의 삶이

아니라 인정과 수용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저절로 생겨날 수 있다.

 

다른 곳에는 비가 내릴 때,

강원도는 눈이 오더군요.

이것을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용감하게 남을 위해 뛰어드는 사람의 공통점."

  매스컴을 보다보면

종종 용감하게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들은

이런 것이라고 합니다.
1. 그들은 자신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을 구별하지 않는다.
2. 자신의 노력으로 집단이나

조직의 성장을 이끌어 낼 때

기쁨을 느낀다.
3. 힘든 상대를 도움으로써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준다.
4. 그런 강한 영향력으로

잠들어 있는 집단의 마음을

움직이고 이끌어 낸다.
여러분은 남을 위해

용감하게 자신을

희생할 수 있습니까?

위의 4가지를 명심하면

희생의 삶, 바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희생과 사랑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부터가 그렇게

변해야 할 것입니다.

 

 

엊그제 강의를 했던 강릉의 임당동 성당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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