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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10♣.회개하는 마음.(김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10 조회수2,152 추천수5 반대(0) 신고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루카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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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바리사이와
늘 죄인이라는 생각이 가슴 한 켠을 떠나지 않았던 세리....
이 두 사람의 기도는 너무도 대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판정은 세리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 이야기를 접하는 신자라면
바리사이의 기도가 너무 형편없었다는 생각이 들 것이고,
반면 세리의 기도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판정은 당연한 것이라고 입을 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쪽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을까요?
아니 어느 쪽이 자신의 삶과 비슷하기를 원하고 있을까요?
어느 쪽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이왕이면 죄를 피할 수 있고, 겸손한 사람이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죄를 짓고 싶어 죄를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교만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죄를 짓고 교만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이 전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우리가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죄짓지 않고 교만한 것보다 죄짓고 겸손한 것이 낫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리사이는 죄를 짓지 않아서 교만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세리는 죄를 지었기에 겸손해진 것이 아닙니다.
바리사이는 근본적으로 죄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율법조항에만 충실했던 사람이었을 확률이 크고,
세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생계는 이어 가게 했지만,
동족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가책에 시달린 사람이었을 공산이 큽니다.

오늘의 주제는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바리사이도 하느님을 사랑하고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살았다면 그 역시 무릎을 꿇고 죄인임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했을 것입니다.
세리도 끝까지 어쩔 수 없었다며, 자신의 죄를 부정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리는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했습니다.
즉, 두 사람이 어떤 삶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이, 두 사람의 태도는 정반대일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세상을 탓하고 환경을 탓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환경을 넘어설 수 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죄는 분명히 피하고자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삶이 끝나기 전까지는
죄와 동떨어진 곳에서 죄와 상관없이 이 세상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죄 안에서 산 것은 바리사이나 세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서 인간의 잣대로 죄의 크기를 재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하느님 앞에 죄인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음은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죄가 없어서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죄인지를 모르기에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죄가 많아서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 죄가 만드는 아픔을 알기에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20130309)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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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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