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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3.1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11 조회수3,336 추천수6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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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3월 11일

사순 제4주일

제1독서 2역대 36,14-16.19-23

그 무렵

14 모든 지도 사제와

백성이 이방인들의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주님을

크게 배신하고,

주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에서

성별하신 주님의 집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15 주 그들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당신의 처소를 불쌍히

여기셨으므로,

당신의 사자들을 줄곧

그들에게 보내셨다.

16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였으며,

그분의 예언자들을 비웃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님의

진노가 당신 백성을 향하여

타올라 구제할 길이

없게 되었다.

19 그들은 하느님의 집을

불태우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허물었으며,

궁들을 모두 불에

태우고 값진 기물을

모조리 파괴하였다.

20 그리고 칼데아 임금은

칼을 피하여 살아남은

자들을 바빌론으로

유배시켜, 그와 그 자손들의

종이 되게 하였는데,

이는 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21 그리하여 주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 땅은 밀린 안식년을

다 갚을 때까지 줄곧

 황폐해진 채 안식년을 지내며

일흔 해를 채울 것이다.”
22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23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

제2독서 에페 2,4-10

형제 여러분,

4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복음 요한 3,14-21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제가 있는 갑곶순교성지에는

꽃나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봄이라 말하는 3~4월에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을

볼 수 있습니다.

매화를 시작으로 목련,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영산홍, 벚나무, 그 밖에도

많은 야생화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그런데 이중에서 제가 제일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꽃이 있습니다. 바로 벚꽃입니다.

 흐드러지게 피는 꽃의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느끼기 때문은 아닙니다.

바로 제가 처음 성지에 와서

처음으로 땀 흘려서 심은 것이

바로 벚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심고 키운 나무 중에서

제대로 자라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제 손만 타면

시들면서 죽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 벚나무만큼은 갑곶에

와서 처음 심는 것이었기에

잘 키우고 싶었습니다.

더 정성을 쏟고 관심을

가졌던 이유였지요.

그런데 저의 염려와 달리

무럭무럭 잘 자랐고,

4월이 되자 드디어 꽃을 피웠습니다.

다른 꽃들이 보이지 않더군요.

그리고 벚꽃이 질 때에는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제가 직접 심고 키운 것이기에,

더군다나 특별한 정성과 사랑이

 들어갔기 때문에 특별한 정이

 생긴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어떠하실까요?

당신이 직접 만들고 키우고 있는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보실 것 같습니까?

왜 그렇게 큰 사랑을 주시는지,

그래서 끊임없이 기회를 주시는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바로 우리들을 특별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작품입니다(에페 2,10).
이렇게 귀한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특별한 사랑을 받는

존재가 우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3,15)

라고 분명히 말씀하시지요.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광야에서 독사에게 물렸을 때

모세가 들어 올린 구리뱀을

봐야 살아났던 것처럼,

우리 역시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죄가 용서되는 치유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이라는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빛으로 오신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빛보다 어둠을 가져다주는

죄를 더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요한 3,19 참조).
이렇게 당신 곁을 떠나는

사람들을 얼마나 안타깝게

 지켜보고 계실까요?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지 않는 모습에

 “제발 나를 좀 봐 다오.”라고

안타까운 탄성을

지르시는 것만 같습니다.
제1독서를 보면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칙령을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는 장면을 봅니다.

유배의 고통에서 해방되던 날,

그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지 않았음을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큰 지를 깨달았습니다.

이 해방의 기쁨을 지금 우리들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십자가를 통해서

죄로부터의 해방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큰 표징이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이제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악행이 아닌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것입니다.

(에페 2,10 참조).
‘바라봄’에는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똑같은 것을 바라보아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 자신이 있는 곳이

어두운 감옥 철창 같이

캄캄한 곳이라도 희망의 빛은

 반드시 있고 또 이 빛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바로 빛이신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는 사순시기도

 벌써 4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은 사순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특히 주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여전히 빛이 아닌 어둠만을

바라보고 또 이 어둠을 향해

의미 없이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을 향한 주님의

슬픈 눈이 떠올려집니다.

꿋꿋이 내 길을

계속 나아갔을 때,

나는 내 운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파울로 코엘료)


느보산의 구리뱀.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음의 여섯 가지입니다.
1. 내가 진실로 원하고

 또 하고 싶은 것인가?
2.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가?
3. 결과 및 평가를

직면할 용기가 있는가?
4. 그 결과에 대해

슬퍼할 수 있는가?
5. 배움으로써 성장시킬

지혜가 있는가?
6. 포기할 것들에 대해

열려 있는가?
어떻습니까?

그래도 결정을 해야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이 아닐까요?

무조건 피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짖어대는 개가 생각납니다.

 겉으로는 시끄럽게 짖어대면서

강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

꼬리를 내리고 도망갑니다.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위의

여섯 가지를 따져보십시오.

분명히 바른 결정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어제 강의를 했던 홍은동 성당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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