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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3.1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12 조회수2,965 추천수6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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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3월 12일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이사 65,17-2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7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18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리라.

19 나는 예루살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백성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그 안에서 다시는 우는 소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20 거기에는 며칠 살지 못하고

죽는 아기도 없고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는 노인도 없으리라.

백 살에 죽는 자를 젊었다 하고

백 살에 못 미친 자를

저주받았다 하리라.

21 그들은 집을 지어

그 안에서 살고 포도밭을

가꾸어 그 열매를 먹으리라.”

복음 요한 4,43-5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43 떠나 갈릴래아로 가셨다.

44 예수님께서는 친히,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하신 적이 있다.

 45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가시자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분을 맞아들였다.

그들도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축제 때에

그곳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46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47 그는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였다.

48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49 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51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

52 그래서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묻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53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5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시어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셨다.

많은 이들이
여행을 좋아합니다.
저 역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지요.
그런데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일까요?
여행 중일까요?
아니면 여행을 다녀온 다음일까요?
사실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여행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물론 여행 중에 겪게 되는
즐거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말을 종종 하지요.
‘집 떠나면 고생이다.’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순간은 내게 다가올
새로움에 대한 기대 때문에
즐거움만 가득합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소설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왕자’에서 나오는 이 구절은
우리에게 큰 공감을 줍니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이렇게 기다림은 행복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다리지 못하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우리입니다.
또한 기다리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표시했던 적도
 많았던 우리였습니다.
어떤 분이 제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제가 오랫동안
기도했는데도 주님께서는
아무런 응답을 주시지 않습니다.”
본인이 생각했던 오랫동안의
기준은 어떤 것일까요?
사실 하느님이신 주님께서도
자신의 삶을 통해 기다림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순간부터
하느님의 일을 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3년을
위해 자그마치 30년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했을까요?
약간의 정성이 담긴 기도에
응답이 없다면서 불평불만을
 던지고 있는 기다리지 못하는
 모습을 너무나 쉽게 보입니다.
왕실 관리가 예수님께 자신의
아들을 고쳐달라는 청을 합니다.
고향사람들도
예수님을 믿지 못해서
계속된 표징을 요구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방인인
왕실 관리는 어떠할까요?
그 역시 부족한 믿음으로
 인해서 직접 볼 수 있는 표징과
이적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라고 말을 했던 것이지요.
바로 그때 부족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그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을 보입니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떠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아들은 살아났습니다.
아들을 향해 가고 있는 그의
기다림에 대해 묵상을 합니다.
 만약 예수님께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기다림은
불평불만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어떻게 왕실관리인 내 말을
무시할 수가 있지?’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예수님을
만났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절망에
가득 찼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치유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의 기다림은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무척 행복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기다림을
 가지고 있을까요?
 기쁨과 찬미의 기다림,
그래서 진정으로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칠 수 있는
기다림을 간직해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지혜는
기다림과 희망,
이 두 가지 말로 요약된다.
(알렉상드르 뒤마

 

왕실 관리의 아들을 살려줌
"기쁨의 게임"
엘레나 포오터의
 ‘파레아니의 편지’는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기쁨의 게임’을 실천하여
 온 마을 사람들을 희망과 기
쁨으로 변화시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책의 한 장면입니다.
어느 해, 성탄 선물 뽑기에서
인형을 받고 싶어 하는 어린
파레아나에게 지팡이를 주자
서럽게 웁니다.
이렇게 우는 아이를 보고
 아버지가 말하지요.
“바보같이 울긴 왜 울어?
너에게 지금 이 지팡이가
필요 없다는 것을
기뻐하며 되잖니?”
이러한 기쁨의 게임을
우리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최악의 상황에서도 기쁨은
반드시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쁨을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쁨 안에서
분명 하느님의 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갑곶성지에는 지난 1월 사제서품 받은
11명의 새신부님께서 첫미사를 봉헌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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