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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이사65,17~2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12 조회수2,151 추천수0 반대(0) 신고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이사65,17~21)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17)

 

이사야서 65장 17~25절까지는 주님께서 장차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 ('샤마임 하다쉼 와아레츠 하다샤'; shamaim hadashim waarets hadasha; new heavens and a new earth)에 실현될 종말론적 축복에 대한 예언을 다룬다.

이와같은 예언은 이미 메시야 왕국과 관련해서 이사야서 11장 6~9절, 25장 6~8절, 26장 19절, 35장 등에서 분명하게 혹은 어렴풋이 예언되었다.

또한 이것은 요한 묵시록 21장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예언남은 자의 보존과 악인의 심판을 예언한 이사야서 65장 8~16절의 단락 다음에 제시된다는 것은, 이 새로운 왕국이 주 하느님의 신실한 종들만 누릴 수 있는 의로운 왕국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곳은 어린양의 피로 구속을 받은 거룩한 자들만 머무를 수 있으며(묵시21,8.2),다시는 죽음이나 눈물이 없고(묵시25,8; 21,4참조), 주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할 것이므로(묵시11,9) 주님께서 그 왕국에 머무는 자들의 모든 소원을 다 알고, 그 소원대로 축복을 주시는 곳이다(이사65,24).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 대한 예언 궁극적으로 영원한 천국의 모습 (루카16,23; 요한14,2; 필리3,20; 1테살4,17; 묵시7,15~17; 22,1~5)연상케하는 예언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바빌론에서 풀려나는 것이나 그리스도의 육화 (강생)로 이루어진 지상 교회의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으로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본 단락의 예언을 종말과 직접 관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왜냐하면, 본 단락에 열거된 내용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바빌론 포로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회복된 사건이나 죄악의 권세에 억눌린 자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구원받아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축복을 훨씬 뛰어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본 단락에 제시된 축복들의 밑바닥에는 영원성과 완전성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세에서 이루어질 축복과 관련된 바빌론 포로 귀환이나 그리스도의 대속에 근거한 성도들의 구원 사건에 직접 대입시키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보인다.

 

그러므로 본 단락의 예언의 궁극적 성취는 요한 묵시록 21장의 내용과 더불어 그리스도 재림 이후 종말의 날, 모든 세대의 성도들이 영원히 누릴 궁극적 축복인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시와 관련된 축복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한편, 원문에는 이사야서 65장 17절이 이유 접속사 '키'(ki; for)로 시작된다. 이것을 고려하면, 본문은 앞절 후반절에서 제시된 내용, 즉 하느님의 백성들이 과거에 당하던 환난을 모두 잊고 고통을 완전히 벗어버릴 수 있게 되는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께서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 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아담의 타락 이후 죄가 들어와서 오염된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이 될 것이다. 

이것은 '창조하리라'에 해당하는 '보레'(bore; I will create)의 원형 '빠라'(bara)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주님의 창조 사업을 묘사한 단어 (창세1,1)와 동일한 동사라는 사실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여기서 예언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은 현재의 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개조하는 것이 아닌, 본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세계에는 지금 이 세상에서 범람하는 죄와 고통, 또는 저주나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옛 세계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후의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2베드3,12~13).

한편 본문에서는 '빠라'(bara) 동사가 임박한 미래를 나타내는 분사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이처럼 새로운 창조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사야가 본 단락을 예언하고 있는 시점은 대외적으로 북부 이스라엘이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하고, 남부 유다 역시 아시리아에 의해 수많은 성읍들이 유린을 당하였고, 또 장차 바빌론 침공, 즉 남부 유다의 파멸의 그림자가 먼 발치에서 다가오고 있는 시점이었다. 

아울러 이 시기에 남부 유다는 내적으로 불의와 부정, 폭력과 우상 숭배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으며, 권력자들, 기득권자들이 저지르는 여러 가지 죄악과 폭력으로 말미암아 소외된 자들의 눈물과 고통과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한 급박한 위기 상황, 답답한 현실 상황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장차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을 예언하면서 창세기 1장 1절에서 사용된 '빠라'(bara) 동사를 분사형으로 표현함으로써, 이 놀라운 일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헀다.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본문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 따른 결과 가운데 하나 대표적 현상을 말해준다.  여기에는 강한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부정어 '로'(lo)가 두 번이나 사용되어 결코 기억되지도 않고 결코 생각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예전의 것들'에 해당하는 '하리쇼노트'(harishonoth; the former)복수형 단어로서 직역하면 '이전 것들'(the former things)이 된다. 

이것은 이사야서 65장 16절에 예언된 '이전의 환난들'을 포함하여 옛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난들과 죄악들을 다 포함한다. 

그리고 '마음에 떠오르다'는 의미로 사용된 '타알레나 알 레브'(thaallena al leb; come into mind)는 문자적으로 '마음의 표면 위로 떠오르다' (ascend on the heart)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전혀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의 표면 위로 떠오르지도 않는다는 표현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를 다시금 힘주어 강조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이루신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이전의 것과는 전혀 새로운 것이 될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아울러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들인 의인들에게 심령의 완전한 치유가 이루어질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환난에서 해방을 받았어도 과거의 그 생각이 자꾸 머리속에 떠오르면, 현재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더 이상 그것을 축복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고난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고난 차원에서 해방될 뿐 아니라, 그 고난을 당했던 기억 자체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요한4,5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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