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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14 조회수2,462 추천수0 반대(0) 신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찬미예수님

수많은 영성 신학자와

문학가들을 홀리게 했던 기도,

사람이 아닌

하느님이 만드신 기도,

어떤 이는 이 기도만을

한평생 묵상했는데도

 한마디 밖에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 기도,

때로는 너무 흔하고 자주

쓰기에 귀하고 거룩한지

모르고 그냥 읍조리는

불감증이 걸려있는 기도.,

예수님이 떠나시고 난 다음에

허둥지둥되는 공동체를 하나로

게 했던 일치의 기도,

그 기도가 바로

주님의 기도의 기도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어마어마한

기도를 다 묵상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대략의 줄거리를

우리는 알고 또 의식하면서

주님의 기도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기도 하나만을

잘 바쳐도 치유가 될 것입니다.

사람 머리에서 나온 기도가

아니라 이 세상 유일하게

하느님께서 직접 지으신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 기도는 누구에게

가르치신 기도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

이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자인척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세례 받았다고

다 제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 충성하고

정말 헌신하는 자들,

직분을 떠나서,

세례 받은 사람들 가운데

많지 않습니다.

지난 주 말씀드렸죠?

금에도 14k, 18k, 24k

순금이 있듯이 신앙도

14k, 18k,

순금 신앙이 있다고요.

그리고 불순물이 섞일수록

더 반짝거리고 딱딱하고,

순금이 되어야

유연성이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특별히

분명하게 제자였을 때만

이해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무늬만 제자가 아닌 참다운

제자의 위치가 되었을 때는

눈물이 펑펑 흘리며

하는 기도입니다.

아까 어떤 성인은

죽을 때까지 주님의 기도를

묵상했는데.

한 구절만 가지고 묵상하고

다른 단어는 가보지도

못했다고 했지요?

그 구절이 뭔지 알아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마더 테레사 성녀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할 때 마다 새로운 복음들이

계속 흘러 나왔대요.

 그래서 주님의 기도에

제일 중요한 것은 첫 번째로

‘제자 된 자만이 알 수 있다.’

분명히 예수님이 제자들에

한 기도이지 예수님

쫓아다녔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했던

기도가 아니에요.

특별히 선택한 제자들,

우리들. 그렇지요?

세례 받은 그 자체가

선택받은 것,

부르심 받은 것에요.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선택받은 것에요.

정말 제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그 뜻을

이해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기도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기도의

첫 단추에요.

두 번째, 주님의 기도 할 때

그 내용의 순서에

주목을 해야 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면서 세 줄을 하느님과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얘기가 나오고,

뒤에 있는 세 가지는

우리의 요구,

즉 필요한 것을

달라는 기도에요.

달라는 기도를 먼저 하고

하느님의 찬미가 나가지 않고,

앞부분에 먼저 하느님의

찬미가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 삶의

제일 중요한 자리에

하느님이 딱 계셔야 되요.

은총의 비는 위에서 아래로

뿌리지 땅에서 거꾸로 하늘로

올라가는 비는 없어요.

우리 집안에, 내 영혼 안에,

우리 본당 안에,

우리 반 모임 안에 하느님

자리를 몰아내고

인간이 달라고 하는 것이

하느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죄에요.

죄라는 것은 철학적으로 보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할 때 그게 죄에요.

하느님 자리에 제 자신이

올라가 있을 때 그게 죄에요.

하느님 밀어내고 돈을 그 자리에

올려놓았을 때 그게 죄에요.

하느님 밀어내고

 자기 취미생활이 올라가

있을 때 그게 죄에요.

하느님 밀어내고

자식이 그 자리에 올라가

있을 때 그게 죄에요.

 먼저 하느님께 최상의

찬미를 드리고,

그다음 우리 자신의

필요함과 우리의

소원을 간청하는 것.

간청하더라도 겸손하게

간청해야 되죠.

맡긴 것 달라는 그게 아니죠.

하느님이 정당하게

당신의 자리를 잡고 계실 때

모든 것이 정돈되어 가요.

그래서 기도는 하느님의

의지에 우리를 복종시키려고

하는 노력입니다.

 그러면 뒷부분에 나오는

우리의 필요가 뭐에요?

처음에는 빵 달라하고,

 두 번째는 사죄를 구하고.

마지막에는 시험이 올 때

도움을 구해요.

빵은 우리의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겁니다.

다시 말해서 빵을

구한다는 것은 현재 내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사죄 받기를 구해요.

죄의 용서를 청해요.

과오를 하느님께

고하여서 하느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하는 거죠.

빵을 청하는 것은

 현재의 유지이고,

죄 사함을 구하는 것은 과거죠.

과거 하느님 역사 안에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내안에 상처 남아있는 것에 대한

사죄를 구하는 거죠.

그러고 나서 미래를 구해요.

앞으로 시험이 들 때

그 시험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뒷 부문의 이 세 가지는

현재와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것을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입에서

나온 기도라고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기도가 짜여있을까?

정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향하여 잘 정리가 되어있는

 기도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

육적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양식을 갈구하는 데 우리는

생명의 유지자이신 하느님께

향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죄의 용서를 갈구할 때

우리의 생각은 구세주이신

예수그리스도께로

향한다는 뜻입니다.

미래의 유혹에서

구해주실 것을 간구할 때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보호자이신 성령께

나가게 하는 것이죠.

 또한 이 후반부에 나오는

세 가지가 다 현 세계만을

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빵을 구하는 것은 현재의

어려움을 지혜롭게 잘 해결하게

 ‘분별’을 청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입으로 들어가는

뒤로 나가는 빵을

부탁하는 것이 아니죠.

 우리 신자들 자유기도

하라고 하면 못 하지만

주님의 기도는 잘 하잖아요?

하지만 너무 잘 하기 때문에

너무 깜깜하게 몰라요.

마치 매일 성체를 영하다

 보니까 성체가 얼마나 귀한지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들이

 한 달에 한 번 교도소에서

성체를 영해요.

내일은 신부님이 오시는 날.

그러면 그날 밤

설레임에 잠을 못 자요.

사제가 성체를 모시고

들어가면 철장 안에서 무릎을

꿇고 기다리고 있어요.

성체를 입에 넣어 주려고 하면

한 달 동안 그리워하던

성체를 모시게 되니까

눈물을 펑펑 흘려요,

보물도 너무 가까이 할 때는

정말 의식을 갖지 않으면

형식이 돼 버립니다.

 정리합시다.

주님의 기도는

제자인 척 하는 사람,

무늬만 제자인 사람은

 절대 죽을 때까지

못 알아 들어요.

예수님께 순도 100%의

충성을 받치고 헌신하려 하는

정말 참된 제자들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에요.

그래서 주님의 기도 묵상

첫 번째 단추는 참된

제자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두 번째 묵상 단추는

우리의 모든 기도의 서두는

하느님께 찬미를 드려야 된다.

당장 나의 급한 것,

살려달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짧게라도

‘주님 찬미 받으소서.’

모든 기도의 맨 첫자리에는

하느님이 앉아 계셔야 합니다.

그다음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하느님께 아룁니다,

현세적인 것, 과거의 묻었던 때,

앞으로 다가올 많은 시련과

유혹에서 구해 주십시오.

 보통 수녀원 피정 가서

주님의 기도 하나만 가지고

한 달 정도 피정시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기도에 얼마나 많은 묵상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그 다음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거기에도 얼마나 많은 보물이

묻혀있는 지 모릅니다.

 여러분 기도하실 때 마다,

시간 날 때 마다 천천히

주님의 기도를 하세요.

정말 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말고 저의 아버지.

 이 김 신부의 아버지.

마리아의 아버지.

루시아의 아버지.

미사 할 때 보면

주님의 기도 너무 빨리해요.

천천히 합시다.

2018년 사순 제1주일 화요일 (2/20)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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