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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3.2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26 조회수2,760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8년 3월 26일

성주간 월요일

제1독서 이사 42,1-7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펼치신 분 땅과

거기에서 자라는

온갖 것들을 펴신 분

그곳에 사는 백성에게 목숨을,

그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숨을 넣어 주신 분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복음 요한 12,1-11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제가 있는

 갑곶성지에서는
새벽에 시끄러운 소리를

많이 들을 수가 있습니다.

바로 북한에서 방송하는

대남방송입니다.

강화에 있지 않았다면

전혀 들을 수 없는 소리입니다.

그렇다면 왜 들릴까요?

그만큼 북한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강화 평화전망대에만 가 보아도

북한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전망대에서 북한까지

직선거리로 2.3Km밖에

되지 않거든요.
이렇게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갈 수도 없고

또 서로 연락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새들을 비롯한

동물들은 어떨까요?

자유롭게 남에도 가고

 또 북에도 갑니다.

인간들 스스로 틀을 만들고

서로를 가두고 있지만,

동물은 그 틀에서

자유로운 것이지요.
분단이라는 틀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밖에도 스스로 만든 틀이

얼마나 많을까 싶습니다.

 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스스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시인 ‘에드윈 마크햄’은

 ‘원’이라는 시를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원을 그려

나를 밖으로 밀어냈다./

나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그러나 나에게는/

사랑과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나는 더 큰 원을

그려 그를 안으로 초대했다.
나의 원을 스스로 작게 만들고서는

자신의 자리가 좁다며 다른 이들을
쫓아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나의 원을 넓이면 되는데,

그래서 모두가 그 큰 원 안에서

 함께 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데

나의 것만을 주장하면서 결국

 스스로 고립되고 있는

우리는 아닐까요?

이 원이 바로

우리 마음의 크기이고,

우리 지혜의 크기입니다.
마리아가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립니다.

최고 존경의 표시입니다.

주님을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인 것이지요.

그런데 유다 이스카리옷이

이 모습을 보고서는

 못 마땅해 합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낭비이고 사치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주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시작임을 알았더라면

그런 말이나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마음이 아니라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에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즉, 그의 원은 세상의 것들로

가득차서 주님의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 마음의 원에 주님의 자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그 어떤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남몰래 하는 선행은 땅 속을

흐르며 대지를 푸르게

 가꾸어 주는 지하수

줄기와 같은 것이다.

(토머스 칼라일)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고 닦아 드린 마리아.

"단순한 능력"

(마크 맨슨, ‘신경 끄기의 기술’ 중에서)

찰스 부코스키는

우체국 사무원이었다.

 월급 대부분은 술 마시는 데 쓰고

나머지는 경마장에서 날렸다.

밤엔 낡은 타자기 앞에 앉아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쓰고,

고주망태로 마룻바닥에 널브러진 채

아침을 맞기 일쑤였다.
그렇게 30년을 흘려보냈다.

쉰이 되었을 때 작은 출판사의

 편집자가 웬일인지

그에게 흥미를 보였다.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는 편집자에게 답장을 보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겠군요.

우체국에 남아 지금처럼 살거나

나가서 작가 놀이를 하며 굶거나,

전 굶기로 결정했습니다.”
계약서에 서명한 그는 3주 만에

자신의 첫 장편 소설을 내놓았다

제목은 그냥 ‘우체국’이라 붙이고

헌정사는 “이 책을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습니다.”라고 썼다.

그는 단숨에 성공한

소설가로 발돋움했다.
부코스키의 이야기는 미국 문화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목표를 위해 분투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다가 결국 그 꿈을

이루는 이야기 말이다.

사실 그런 건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인데도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봤지? 부코스키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어.

늘 자신을 믿고 온갖 역경을

헤쳐 나간 끝에 성공한 거야!”
그런데 부코스키의 묘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애쓰지 마.”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명성을 얻었음에도

부코스키는 비주류였고

스스로도 그걸 알았다.

그의 천재성은

 역경을 극복하거나

당대의 문호로

출세했다는 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자신의 못난 모습을 오롯이

드러내 세상과 나누었다.

그의 천재성은 이런

 단순한 능력에 있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글인 것 같아서

이렇게 옮겨 보았습니다.

찰스 부코스키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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