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3.2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27 조회수2,634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8년 3월 27일

성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 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복음 요한

13,21ㄴ-33.36-38

그때에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께서는

 21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23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24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25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28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30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36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37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3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모든 동물이 완벽한

상태에서 태어나는 반면에

인간은 단지 어렴풋이

윤곽만 잡힌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에 키웠던 개가 새끼를

낳았던 것을 기억해봅니다.

보름쯤 지나니까 눈을 뜨고

이빨도 나옵니다.

3주 정도 지나니 걷기 시작하고

스스로 배변까지 합니다.

어미로부터 독립하기까지

3~5개월이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떻습니까?

사람은 돌때까지는 특별히

보살펴야 하고,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돌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렇게 인간은 타고난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동식물들은

 완벽한 상태에서 태어나게 했는데,

왜 인간은 이렇게 불완전하게

 태어나게 했을까요?

바로 완성된 모습을 인간에게

맡기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함께 하면서 서로 도우면서

완성할 수 있도록,

또한 자신의 나약함을

기억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힘을 불어넣으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한 가운데에

‘사랑’이 있습니다.
당연히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인간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어느 카페에서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중 젊은 청년 한 명이

스마트폰에만 온 정신을

쏟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만 같고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영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카페

주위를 둘러보니 거의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앞에 사람이

있는데도 말이지요.

이런 모습들이 우리 삶 안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사랑을

외면하는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큰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던 주님이십니다.

더군다나 당신을 누가

팔아넘길지를 또한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사랑하는

제자들이 어떻게 배반을 하고

또 외면을 할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다 이스카리옷에게는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라는 말씀까지 하십니다.
당신에게 다가올 모든 수난을

충분히 피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하시지 않지요.

당신의 그 큰 사랑을 통해

우리 모두가 구원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로써 우리가 온전히

완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내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데 급급하다면 절대로

완성될 수 없음을 기억하면서,

모든 것을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랑을 그리고 함께 구원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해서라도

인생의 소박함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세련된 삶의 시작이다.

(윌리엄 모리스)


예수님을 팔아넘긴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

"나 하나쯤이야"

(‘따뜻한 하루’ 중에서)

옛날 어느 부자가 자신의

하인 백 명을 한 곳에

불러 모았습니다.

하인들이 모인 자리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부자는 하인들에게 금화 한 닢과

작은 술 단지를 하나씩

나누어 주고 말했습니다.
"곧 큰 잔치를 여는데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특별한 포도주를

연회에서 내놓고 싶다.

그러니 너희들은 내가 준 금화로

각자 다른 포도주를 한 단지씩

사 와서 이 큰 항아리에 한데

섞어 두도록 해라.

여러 가지 포도주를 섞으면

어떤 맛이 날지 매우 궁금하구나."
하인들은 술 단지와

금화를 가지고 각자

포도주를 구하러 떠났습니다.

그런데 한 하인은 주인에게

 받은 금화를 자신이 챙기고

자신의 술 단지에는

물을 채워 슬그머니 큰 항아리에

부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큰 술 항아리에

물이 조금 섞인 걸 누가 알겠어.

이 금화는 내가 써야겠다.'
잔치가 열린 날 부자는

포도주를 사러 보낸 하인들을

따로 모아 두고 말했습니다.
"오늘의 잔치는 그동안 고생한

 너희들을 위한 잔치다.

오늘 하루는 너희가

사 온 술을 마음껏

마시며 즐기기 바란다."
그리고 큰 항아리에 담긴

포도주를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술을 받은 하인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술잔에 받은 것은

전부 맹물이었습니다.

백 명의 하인들은 모두

나 하나쯤이야 하고 생각하고,

금화를 빼돌리고 물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결국, 하인들은 빼돌린 금화를

도로 빼앗기고 잔치 내내

맹물만 마시고 있어야 했습니다.
'나 하나쯤이야'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그 행동은

당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인지도

잊게 만들어 버립니다.

어제 동기모임에서 먹은 홍합탕.

홍합이 정말 커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