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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3.2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28 조회수2,269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8년 3월 28일

성주간 수요일

제1독서 이사 50,4-9ㄴ

4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5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

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9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복음 마태 26,14-25

14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15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16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17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1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0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21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5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신학생 시절에 후배들이

참 잘 따르는 선배님이 계셨습니다.

이 선배님께서는 후배들에게

자주 밥을 사주셨지요.

 신학생이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늘 본인이 식사 값을 지불했습니다.

제가 여쭤보았습니다.

왜 늘 식사 값을 본인만

 지불하느냐고 말이지요.

그러자 이렇게 말씀하세요.

“너희도 후배들에게 많이

베풀라고 이렇게 하는 거야.”
이렇게 많이 베푸니 늘 후배들이

이 선배님을 잘 따랐습니다.

 지금도 사제로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베풀면서

사시는 선배 신부님의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베풀기만 한다고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한

사제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면 됩니다.

자신이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기쁨을 원한다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하고,

용서를 원한다면 먼저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평화를 바란다면

우리 주변의 세상 안에서

평화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는 사람,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절

망과 슬픔을 주는 사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사람,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다투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결국 어떤 사람일까요?

 행복하지도, 사랑을 간직하지도,

기쁘지도, 용서받지도,

평화롭지도 못한 불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자신의 상처는 영원히

치유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늘 사랑을 말씀하셨고,

당신이 먼저

그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당신을 팔아넘길 제자가

누구인지 아는 상황에서도

그 사랑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감사하기는커녕

근심하면서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라고 묻기만 할 뿐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그 사랑을 실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걱정

그리고 그후

자신들이 겪을 일에 대한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주님을 팔아넘기고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님의 죽음 뒤에는 다락방에

숨어서 벌벌 떨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사랑을 주지 못한다면,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으로

끊임없이 판단하고

단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면

2,000년 전의 제자들 모습처럼

주님의 뜻과는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받고자 한다면

 사랑을 해야 하고,

행복해지고 싶다면 행복을

줘야 하며,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펼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는

충실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젊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메리카 원주민 속담)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만약' 과 '다음'

('즐거움은 지혜보다 똑똑합니다' 중에서)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시간 낭비입니다.

뉴욕의 저명한 한 신경정신과 의사는

퇴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동안 환자들을 만나면서

나의 생활방식을 바꾸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스승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많은 환자들이 입에 담는

 '만약'이란 두 글자입니다.

나와 만난 환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지난 일을 회고하고,

그때 반드시 해야 했는데

하지 못했던 일을

후회하면서 보냅니다.
"만약 내가 그 면접시험 전에

준비를 잘했더라면"
"만약 그때 그 사람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그렇게 후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엄청난 정신적인

소모를 가져올 뿐입니다.

차라리 이렇게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당신이 습관처럼 쓰는 '만약'이란 말을

 '다음에'라는 말로 바꾸어 쓰는 것입니다.

만약 꼭 들어야 할 강의

듣지 못했다면 이렇게 말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오면

반드시 그 강의를 들을 거야!"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그 말은

이미 자신의 습관이 되어 버린

사실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절대로 이미 지난 일을

가슴에 담아두지 마세요.

문득 지난 일을 후회하는

 마음이 들면 이렇게 말하세요!
"다음번엔 그런 바보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 거야."
이렇게 한다면 과거의

후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동시에 당신의 소중한 시간과

정열을 현실과 미래에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성모님을 떠올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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