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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3.2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29 조회수2,86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3월 29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제1독서 탈출 12,1-8.11-14

그 무렵

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일러라. ‘이달 초열흘날

너희는 가정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집집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마련하여라.

4 만일 집에 식구가 적어

짐승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

사람 수에 따라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함께

짐승을 마련하여라.

저마다 먹는 양에 따라

짐승을 골라라.

5 이 짐승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

6 너희는 그것을 이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모여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8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12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14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제2독서 1코린 11,23-26

형제 여러분,

 23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 요한 13,1-15

1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2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6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7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8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11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14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제가 아는 어떤 신부님은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신학생 때부터 오랫동안

보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할 수 있지요.

 이 분은 늘 소극적이었고

그래서 앞에 나서는 모습을

보인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님께서 계시는

본당 신자들이 성지순례를 와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아주 의외의

모습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글쎄 신자들의 일에 대해

아주 적극적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신자들 재교육을 위해

외부강사를 계속해서 초빙을 해서

신자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고 계셨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이 신부님 본인은

 교육 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자들을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고 이를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렇다면 왜 본인이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계속해서 이런 교육의 장을

 만드시는 것일까요?

바로 신자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힘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인은 별 관심이 없어도 신자들을

위해서 그러한 자리를

계속 만드시는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의 증거를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에서 행하는 발 씻김 예식을

통해서 다시금 느낄 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누가 배반을 할지를 또 누가 자신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말할지를

또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제자들이

자기 살길을 찾아서 도망칠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호산나”라고

외치면서 열렬하게 환호했던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라고 고함을 지를 것도 아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침을 뱉고

뺨을 칠 것도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발을 씻어 주십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십니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서로 발을 씻어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먼저 형제 앞에 몸을 굽혀야 합니다.

당연한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몸을 굽히지 않습니다.

사랑의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보다는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상대방이

내 앞에 몸을 굽히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내가

몸을 굽히는 것을 피합니다.
주님께서 몸을 먼저 굽히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본을 따라야 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리 역시 형제 앞에

몸을 굽혀야 합니다.

즉,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다가서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인정받고 대접받으려는

마음을 접고 대신 사랑하겠다는

마음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본을 쫓아서

살아가는 신앙인의 모습이고,

주님의 사랑이 끝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문명의 진정한 의미는

욕망을 늘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면서도 자발적인 방식으로

욕구를 줄여 나가는 데 있다.

(간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

"인내를 나의 것으로 만들려면?"

성공을 이야기하는 책들을 보면

남다른 재주와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어떠한 순간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내를 말합니다.

즉, 인내를 통해서 성공했다는 것이지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포기하지요.

재능과 능력이 있어도 이렇게

포기하는 습관 때문에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인내가 없는 사람은 스스로

능력이 없다는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교육만으로는 안 됩니다.

용기가 있는 것으로도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참을성을 갖고 사는

인내만이 삶을 변화시킵니다.
미국의 사업가 강철왕 카네기

역시 승부를 가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참고 있으면

반드시 기회가 생긴다.’

는 명언을 남겼지요.

그런데 이 인내를 나의 것으로

만들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 중요한 ‘인내’를 나의 것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만찬 성목요일로 거룩한 성삼일이 시작됩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만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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