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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3.3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30 조회수1,743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8년 3월 30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제1독서 이사 52,13―53,12

13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

14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지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

15 그러나 이제 그는 수많은

민족들을 놀라게 하고 임금들도

그 앞에서 입을 다물리니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을 그들이 보고

들어 보지 못한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53, 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던가?

주님의 권능이 누구에게

드러났던가?

2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3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4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7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8 그가 구속되어 판결을

 받고 제거되었지만 누가

그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던가?

정녕 그는 산 이들의 땅에서

잘려 나가고 내 백성의

악행 때문에 고난을 당하였다.

 9 폭행을 저지르지도 않고

거짓을 입에 담지도 않았건만

 그는 악인들과 함께 묻히고

그는 죽어서 부자들과 함께 묻혔다.

10 그러나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11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12 그러므로 나는 그가 귀인들과

함께 제 몫을 차지하고 강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리라.

이는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버리고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또 그가 많은 이들의 죄를 메고

갔으며 무법자들을

위하여 빌었기 때문이다.

제2독서 히브

4,14-16; 5,7-9

형제 여러분,

14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15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16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5,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복음 요한 18,1―19,4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학창시절에 제일 자신 있는

과목은 수학이었습니다.

남들은 어렵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수학은 너무나 재미있었고 오히려

어려운 문제 푸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봤는데 끔찍할

정도로 망친 것입니다.

시간 조절을 잘못해서 큰 배점이

달려있는 문제 몇 개를 아예

풀지 못한 것이지요.

시험을 마치고 나서 세상이

완전히 끝난 기분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자신 있는 과목인데

망쳐버렸으니 말이지요.
그렇다면 당시에 느꼈던 삶이

완전히 끝난 것 같은 기분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기분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먼 옛날의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실패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는 지금 겪고 있는 아픔이나

상처가 먼 미래에서도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과거의 아픔과 상처가

지금 자랑스럽게 말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될 때가

더 많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픔이나

상처 자체가 무조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를 어떻게 극복했느냐에 따라서

이야기가 결정되는 것이었습니다.
아픔이나 상처를

피하기만 하면 어떨까요?

나중에 입으로 꺼내고 싶지도

않은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정면으로 맞서서

노력했다면 훗날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지금을 힘차게

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수난을 깊이

묵상하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입니다.

특별히 말씀의 전례와 십자가 경배를

통해서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받으심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짊어지신 우리를 향한

사랑을 묵상하게 됩니다.

바로 이 십자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십자가는 분명히 아픔과 상처였습니다.

이를 피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피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을 못 박은 이들과 반대로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질투,

두려움, 배신, 권력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랑’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랑으로 십자가에 못 박하시고

죽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다 이루어졌다.”
피하고만 싶은 아픔과 상처가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순간순간

다가오는 아픔과 상처의 십자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피하려고만 하고,

불평불만만을 내뱉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닙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이겨나갈 때, 그 십자가는

 내 안에서 또 하나의 소중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낱말 하나가 삶의

모든 무게와 고통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그 말은 바로 사랑이다.

소포클레스)

주님 수난 성금요일입니다.

"수고와 노력"

지금 개를 3마리 키웁니다.

아주 어렸을 때, 도둑으로부터

우리 집을 보호하기 위해 키웠던

개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신부가 된 후에 넓은 마당이 있는

갑곶성지에 와서는

계속 키우게 됩니다.

사실 한 마리는 태어난 지 두 달

지나서 바로 왔지만,

다른 두 마리는 이미

 다 성장한 상태에서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강아지 때부터

키운 개는 항상 제 곁을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지만,

다른 두 마리는 제 곁을 떠나

멀리 도망가고 싶어

하는 것만 같습니다.

아마 전 주인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렇겠지요.

그래서 더 관심을 갖고 대하려 했고,

특히 간식을 자주 주면서 친밀감을

높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도망가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수고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간관계 안에서는

더 복잡한 수고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즉,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첨가해야 합니다.

 바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입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내 애정을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배려와 고민 없이

무작정 공세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 되고 맙니다.

실제로 사회에 문제가 되는

 스토킹이 무엇입니까?

본인은 사랑하는데 상대방은

받아주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쌍방의 소통입니다.

일방으로 사랑으로 진행된다면

엄연한 폭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유축성미사 때의 사제들 행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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