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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미사 강론]주님 수난 성지 주일 기념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2018년 3월 25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31 조회수2,761 추천수1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s://www.vaticannews.va/en.html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8.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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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8325일 주일[주님 수난 성지주일]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입당송 요한 12,1.12-13; 시편 24(23),9-10

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0,4-7

화답송 : 시편 22(21),8-9.17-18.19-20.23-24( 2)

2독서 : 필리피서 2,6-11

복음 : 마르코 복음14,1―15,47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8680&gomonth=2018-03-25&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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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 주일 기념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 베드로 광장

33차 세계 청년의 날

2018 3 25일 주일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8/documents/papa-francesco_20180325_omelia-palme.html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전례는 주님을 찬미하며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들의 경축과 기쁨을 함께 나누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 기쁨은 사라질 것이고 수난의 이야기 끝에 슬프고 쓰디 쓴 맛을 남깁니다. 이 경축은 사도들처럼 우리의 일상 생활의 부분들인 기쁨과 고통, 잘못과 성공의 이야기들을 합해 놓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왠지 오늘날의 남성과 여성 우리도 경험하는 모순적인 느낌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복음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일깨워주신 기쁨이 어떤 이들에게는 분노와 짜증의 원천이라는 것을 분명히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 백성에 둘러 싸인 그 도시로 그리고 노래와 외침의 불협화음에 둘러싸인 그 도시로 들어가십니다. 우리는 그 외침 속에서 동시에 모든 소리들, 용서 받은 아들의 목소리와 치유 받은 나병환자 또는 잃어 버린 양의 울음소리들을 듣습니다. 또한 그때 세리들과 깨끗하지 못한 부정한 남자의 노래, 즉 도시의 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외침을 듣습니다. 자신들의 고통과 비참함에 대한 예수님의 연민을 느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랐던 그 남성과 여성들의 외침 소리  외침은 노래입니다. 그리고 뒤로 남겨지고 간과된 사람들, 예수님에 의해 어루만져진 사람들 모두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입니다. 그들은 지금 이렇게 소리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그들의 고귀함과 희망을 회복시켜 주신 한 분이신 그분을 그들이 어떻게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신뢰할 수 있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너무나 많은 죄인들의 기쁨은 그들의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고 율법과 그 재계에 충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기쁨과 찬미가 불편함과 수치와 분노의 근원입니다.

 

고통과 고생과 비참함에 대해 완고한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기쁨입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스스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런 예의 없는 사람들!” 자기 자신을 내어 줄 수많은 기회들을 잊어 온 사람들에게는 인내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안락한 사람들과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이 하느님 자비에 대한 경축과 기쁨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신뢰하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사람들이 이 기쁨을 나누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그리고 그렇게 여기서 다른 종류의 외침이 나옵니다. 이렇게 소리치는 사람들의 사나운 외침.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것은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이미 멸시와 비방과 거짓 증언으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에서 사실에 대한 설명으로 움직이면서 나타나는 외침입니다. 그것은 이 이야기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이고 남들의 명예에는 전혀 관심 없이 그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이것은 거짓된 설명입니다. 권력을 획득할 방법을 찾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고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들을 침묵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의 외침입니다. 사실들을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것에서 나오는 외침이고 예수님의 얼굴을 망가뜨리고 그분을 범죄자로 만들려고 사실들을 색칠하면서 나온 외침입니다. 그것은 특히 무방비의 사람들의 명예를 손상시킴으로써 그들 자신의 지위를 방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자기 만족감, 교만함 거만함의 쇼에서 나온 외침입니다. 그 외침은 이렇게 소리쳐도 괜찮아 보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의 경축은 질식 당하고 맙니다. 희망은 파괴되고 꿈은 살해당하고 기쁨은 억눌립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은 은폐되고 자애는 차가워집니다. 그것이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의 고함소리입니다. 그것은 연대의 감각은 무디게 하고 우리의 이상을 꺽고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 합니다연민을 지우고 싶어하는 고함소리입니다. 고통 받는 것은 연민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약함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마주할 때 가장 좋은 치료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고 그분이 마지막으로 부르짖은 큰 소리에 우리 자신이 도전을 받도록 놓아두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그분의 사랑을 큰 소리로 부르짖으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젊은이와 노인, 성인과 죄인, 그분의 시대와 우리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복음의 기쁨을 억누를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든 아무도 성부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눈길에서 멀어지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우선 사항들, 선택들 그리고 행동들이 도전 받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감각에 대해서 우리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 안에서 기쁨과 찬미의 근원이십니까? 아니면 그 우선 순위와 관심사가 우리가 죄인과 가장 작은 이들과 잊혀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만듭니까?

 

그리고 여러분,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예수님께서 당신 안에서 깨우신 기쁨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분노와 심지어 짜증의 근원입니다. 왜냐하면 기쁨에 찬 젊은이[청년]는 조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쁨에 찬 청년은 조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오늘 세 번째 종류의 외침도 다음과 같이 가능합니다. “군중 속에 있던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자들을 꾸짖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루카복음 19,39-40)

 

청년들을 침묵시키려는 유혹은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바리사이들은 그들 자신이 예수님을 꾸짖고 그분께 사람들을 침묵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청년들을 침묵시키고 그들이 보지 못하게 만드는 많은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마비시키는 많은 방법들, 그들을 잠자코 있게 하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도록 만드는 많은 방법들. “조용히 해, !” 그들을 조용하게 하고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꿈을 생기 없고 따분하고 옹졸하고 푸념하게 만드는 많은 방법들이 있습니다.

 

이번 성지 주일에 우리가 세계 청년의 날을 경축하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과거와 현재의 모든 바리사이들 심지어 오늘날의 바리사이들에게 하신 대답을 듣는 것이 현명합니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루카 복음 19, 40)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당신은 외치기 위해서 당신 안에 그것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이 금요

  일의 십자가에 못박으시오!”에 굴러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주일의 호산나!”를 위해 선택을  

  할 것인가는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잠자코 있지 않는 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잠자코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자주 부패해 있는 우리 나이든 사람들과 지도자

  들이 잠자코 있다면, 온 세상이 조용히 하면서 그 기쁨을 잃어 버린다면 내가 당신에게 묻습니

  다. 당신은 소리 지를 것입니까?

 

    부디 돌들이 소리 지르기 전에 그 선택을 하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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