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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부활의 기쁨은 계약의 약속이다
작성자김리원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31 조회수4,176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8년 나해 예수 부활 대축일


<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 >


복음: 요한 20,1-9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다.


 (1400)

 

 

중국 전설 중 홍옥아씨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홍옥아씨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공주로 수많은 왕들이 와서 선물을 바치고 구애를 했습니다. 하지만 홍옥아씨는 만족할 줄 몰랐습니다. 그저 남자들이 자신 앞에 와서 쩔쩔매며 가진 것을 다 털어놓고 가는 것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도도함 때문에 더 이상 혼인을 청하는 왕들이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햇빛에 그을려 일을 하고 돌아오는 아낙네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결혼도 못하게 될 것에 대한 불안함에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즐겁게 해 줄 광대들과 노래와 춤꾼들을 불러놓고 흥을 돋우려했으나 공허함은 더 깊어만 갔습니다. 뭇 왕자들이 선물하고 간 값진 보석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왕 중의 왕, 임금 중의 임금이 먼 얼음산 꼭대기에 살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가 다하기 전에 그 임금에게 자신의 춤을 보여주어 혼인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왕이 사는 곳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는 나이가 많은 현자 한 명과 수많은 병사들과 하인들을 데리고 길을 나섰습니다. 정글을 지나고 사막을 지나고 겨울왕국을 지나는 동안 현자와 병사 몇 병사만 남고 다 죽어갔습니다.

마차만 타고 편하게 오던 그녀도 이젠 마차에서 내려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된 나이 든 현자를 태워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죽어가는 병사들을 위해 자기의 옷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들이 고마워하는 모습에 처음으로 따듯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결국 현자도 죽었고 마지막 한 병사만이 남았습니다. 홍옥아씨는 그 병사에게 고마워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산 정상에 오르기 전에 죽고 맙니다.

홍옥아씨가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본 것은 얼음뿐이었습니다. 그 얼음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마치 마귀할멈처럼 지치고 나이 들고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산 밑에서 사람들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산은 곧 눈사태로 무너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홍옥아씨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여 내려갔고 쓰러져 죽어가며 빨리 달아나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희미해져가는 눈으로 쓰러진 자신을 둘러싸 쳐다보고 있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외투를 벗어준 군인, 자유를 주었던 군인, 자신은 걸으며 자신의 마차를 내어주었던 현자 등이었습니다. 그들은 홍옥아씨, 정말 아름답네요!”라고 말하고 있었고, 하늘 저 높은 곳에서 홍옥아씨, 나를 찾고 있었느냐?”는 하느님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런 전설은 각 대륙마다 조금씩 다르게 토착화된 형태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결국 모든 인간은 이웃을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릴 때 완성된다는 현자들의 깨달음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십자가 뒤에만 부활이 있다. 그러나 그 실천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반드시 져야만 하는 십자가가 부활의 조건인 것입니다.

우선 져야하는 십자가는 현세의 즐거움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현세에서 즐거움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상태여야 합니다. 현세의 즐거움에 만족해버린다면 자신을 버리는 여정을 떠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이웃사랑을 위해 자기를 버리는 과정에서 조금씩 기쁨을 체험해야합니다. 작은 십자가의 작은 부활들이 모여 결국 목숨까지도 내어줄 수 있는 사랑의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다 목숨까지 내어놓을 수준이 되었을 때 하늘나라 백성으로 맞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레오 리오니의 티코와 황금날개란 동화는 이 사랑의 완성이 작은 희생에서부터 시작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티코란 어린 새는 이상하게 날개가 없습니다. 물론 동료들은 자신들이 잡은 벌레를 날개 없는 티코에게 물어다줍니다.

티코는 황금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리고는 요정이 나타나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티코는 황금날개를 청합니다. 그런데 황금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티코는 외톨이가 되고 맙니다. 아무 짓도 하지 않는데도 동료들이 잘난척한다고 생각하여 티코를 따돌리는 것입니다.

외톨이가 된 티코는 돈이 없어 자식의 수술을 시킬 수 없는 바구니장수를 만납니다. 그는 자신의 황금 깃털 하나를 뽑아 그 바구니장수에게 줍니다. 그 다음은 돈이 없어 인형놀이를 할 수 없는 사람에게, 그 다음은 또 다른 가난한 사람에게 깃털을 뽑아 나누어줍니다. 황금 깃털이 뽑혀도 그 밑에는 검은 깃털이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모든 깃털이 검게 되자 동료들이 다시 티코를 받아줍니다.

 

황금 깃털을 뽑아 줄 때 기쁨을 느끼지 못하면 아깝기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완성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죽어야 부활한다는 것은 맞지만 항상 작은 죽음과 작은 부활이 매일의 삶에 일어나야합니다.

 

세바시 610회엔 전종목이란 강사가 자신이 어머니와 누나를 암으로 보내고 어떻게 그런 상실감을 극복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운동을 잘 하셨던 어머니가 목소리도 안 나올 정도로 몸이 말라 위암으로 돌아가시고 그때 유일하게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누나도 결혼 직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전정목 강사는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었습니다. 죽기로 결심하고 인생을 정리하고 위해 제주도로 향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바로 그 시간 6살 정도 된 남자 꼬마아이가 초등학교 누나에게 과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도망치다가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나고 과자는 진흙에 파묻혀 버렸습니다. 울고 있는 동생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집에 가면 더 맛있는 거 있어. 먹지도 못하는 거 쳐다보면 뭐 해, 바보같이. 빨리 가자!”

이 말이 마치 죽은 자신의 누이가 자신에게 해 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여전히 아버지도 있고 새 엄마도 있고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는 되돌아와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였고 예쁜 아이도 낳았습니다. 아이는 혈우병을 앓고 있습니다. 피가 멈추지 않고 멍이 심하게 드는 병입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많이 가진 것 중에 단 하나만 핏속에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런 부활의 경험이 더 내어주는 삶을 살게 만듭니다. 불만과 죽음의 그림자로 자신이 사로잡힐 때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감사와 사랑이 그 그늘에 숨어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내가 모함을 당할 때 눈물이 흐르고 분노가 끓어오를 때 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를 반복해서 기도하면 어느새 눈물이 나오고 용서와 평화의 마음이 생겨납니다. 무덤에 묻힌 내가 무슨 분노와 무슨 미움이 있겠습니까? 내가 죽으면 반드시 부활이 오게 돼 있습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성혈을 들고 너희와 맺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이다라고 하는 사제의 말을 듣습니다. 돈을 지불했으면 당연히 물건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계약입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기만 하면 반드시 그 피를 주겠다고 들고 서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피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기쁨이고 행복이고 힘이고 부활입니다. 그분은 계약을 어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한 번도 그분의 말씀 때문에 죽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십자가와 부활의 계약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올 성주간 때 수원교구 내에서 큰 사랑을 보았습니다. 한 신부님이 간이 안 좋아 급하게 간을 이식하지 않으면 며칠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란 문자가 돌았습니다. 가족 내에서는 그 신부님에게 간을 기증할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이 간이 안 좋은 집안병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자가 있자마자 많은 동료 사제들이 서로 자신의 간을 기증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간 기증을 위해서는 자신의 간 70%를 절제해 주어야하고 함께 붙어있는 담낭은 제거됩니다. 간이 다시 회복된다고는 하나 이전과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 아프신 신부님이 본당 신부님일 때 신학생이었던 한 가녀린 신부님이 간 크기가 맞아 선택되었습니다. 사실 그 신부님은 몸이 약해 보여 처음부터 제외되었던 분입니다. 간 기증을 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허락도 받아야하는데 그 부모님은 사제단이 제 아들 신부님의 가족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수술을 받고 두 분이 회복중에 있습니다. 한 분은 다시 의식을 찾아 부활을 맞고 다른 한 분은 자신의 살을 나누어준 기쁨에 부활을 맞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매우 가까워진 그 신부님의 모습을 보며 그 불안함과 두려움을 견뎌내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 기쁨으로 부활을 맞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당신 살과 피를 나누어주셨듯이 우리도 이웃을 위해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활이 없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면 당신처럼 부활의 기쁨을 누릴 것이란 확신도 주십니다. 자신의 간을 내어주는 그 큰 결정이 아니더라도 나의 작은 시간, 작은 관심,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우리는 부활의 기쁨 속에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고베 대지진이 있었을 때 봉사하러 온 사람들 중에 막 자살을 하려던 젊은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또 마더 데레사에게 와서 봉사를 하다가 자살을 하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죽음은 바로 이웃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찾아옵니다. 부활은 이웃을 위해 무언가를 할 때 반드시 오게 돼 있습니다. 살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이웃을 위해 죽어야만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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