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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년 4월 1일 주님 부활 대축일)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01 조회수3,263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8년 4월 1일

주님 부활 대축일

제1독서 사도 10,34ㄱ.37ㄴ-43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여러분은

37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39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4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1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제2독서 콜로 3,1-4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복음 요한 20,1-9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집안의 기둥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많은 이들이 자녀를
집안의 기둥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래는 자녀가 아니라
옛날부터 집안의 기둥을 ‘
아내’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의 태양’이라는 뜻인
 ‘안해’를 써서 ‘아내’라고
부른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지금 현재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섬기고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집안의
기둥으로 아내가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통해 스스로의
자존감이 없어지니 집안의 태양 같은
모습으로 아내가 살 수 없는 것이지요.
누군가가 우리나라에 빌게이츠
같은 사람 5명만 있으면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왜 없을까요? ‘아내’를
‘안해’로 섬기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지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빌게이츠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는 마음,
조금의 실수도 인정하지 못하는
완고함, 무시하고 부정하는 마음
등이 우리 곁에 훌륭한 사람,
큰 변화를 가져올 소중한 사람의
숫자를 계속해서 줄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주님 부활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주님을 믿는
우리 역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다주며,
이를 통해 큰 기쁨을 간직할 수
있게 해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들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상의
죽음을 떠올려보십시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태양과 같은 분이신 데도 불구하고,
당시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믿지 못했고 아무런 죄가
없는 분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인해서 저렇게 약한 사람이
무슨 하느님이냐면서 자신의
 정당함을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들의 완고함과 이기심,
부정적인 마음과 높은 곳에 올
라가려는 욕심들을 모두
부수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고동락을 했던
제자들 역시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했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요한 20,2)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서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무덤을 달려가지요.
그리고 빈무덤을 보고서야 믿습니다.
(요한 20,8 참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루신
 영광스러운 부활임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제자들은 이제 세상에
 열정적으로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증인이 됩니다.
베드로는 힘주어 말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도 10,43)
주님의 부활을 하나의 단순한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콜로 3,1)라고 말하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이 기쁨을
세상에 알리는 증인의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세상에 알리는
증인의 모습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극단적인 개신교 사람들처럼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삶으로 기쁨을
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절망과 좌절의 순간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전쟁의 실
패에도 불구하고 군중들
앞에 나와서 이렇게 당당하게
연설했다고 하지요.
“나는 여러분들의 실패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다시
일어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이러하시지 않을까요?
그래서 부활 하신 뒤에 절망에
빠져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뒤에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평화가 너희와 함께’
(요한 20,21)였던 것입니다.
즉, 다시 일어나는 우리의
 모습을 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다시 일어나 주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증언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부활의 큰 기쁨이 결코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혜는 그 어떤

재산보다 더 중요하다.

(소포클레스)


갑곶성지 부활성야 미사 전.

"주님의 부활을 즐기십시오."

놀면 공부에 방해가 될까요?

경기도 시흥초등학교 4, 6학년을

대상으로 우선 실험집단은

매주 1시간씩 놀이 공간에서

자유롭게 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통제집단은

 정상 수업을 하도록 했지요.

실험 전후에 설문조사,

집중면접, 그림검사, 뇌파검사

등을 통해 변화를 추적했습니다.
실험집단 아이들의 학습태도가

 좋아졌고 주의집중이나 불안 등

심리적 문제들이

개선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고,

협동과 자아통제력은 상승한 반면

공격성은 현저하게 낮아졌습니다.

여기에 더욱 더 놀라운 것은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

기능이 향상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상수업을 했던

통제집단은 변화가 전혀 없었습니다.
노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 기쁨을 즐기십시오.

달걀을 깨고 병아리가 나오듯,

예수님게서 죽음을 깨고 부활하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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